137. 자연이 어우러진 하루의 테마여행
오랜만에 대구여행자클럽이 주관한 테마여행을 떠났다. 아침 6시 10분에 지정된 버스에 올랐다. 여기에 참가하려면 차가 출발하는 시각보다 약 1시간 이상 일찍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오늘 따라 전국에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깜박 잊고 집을 나섰다. 덕분에 제천휴게소에서 우산을 하나 마련했다. 여행의 기념물로 남겨둘까 하고. 이 가을에 볼 것을 찾는다면 단연 단풍이 아니겠는가? 오늘 여행의 전체 흐름은 정선, 태백, 영월군에 걸쳐 있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높은 도로가 있는 함백산 야생화 축제장인 만항재,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정암사, 민둥산역에서 영월역 까지 기차를 타고 보는 단풍 구경, 영월의 청령포, 단종의 귀양길을 슬퍼해서 내린 소나기재에서의 선돌, 선암마을의 한반도 지형을 살피는 일이다. 그런데 비는 하루종일 내린다. 마치 영월의 청령포가 들어 있어 단종의 애환을 하늘도 슬퍼하는양. 그래도 휴게소에서 마련한 우산이 제 몫을 톡톡히 해준다. 비오는 날의 서정에 맞게 단풍은 온 산을 찬란하게 수 놓아 준다.
오늘의 여행은 말 그대로 오랜만의 배움의 연속인 여행이었다. 물론 나에겐 새로운 식물의 발견이 있었으면 하고 바람이 가득했지만.
<사진 1> 오늘 다닌 곳을 중심으로 본 정선군의 관광지도 - 2012.10.28.
<사진 2> 정선군 고한읍의 만항재 - 전국에서 포장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제일 높은 도로(1330m)다.
<사진 3> 고한 함백산 야생화 축제 행사 안내판 - 올해는 7월 27일 부터 8월 5일 까지 축제가 열렸다. 내년에도 이 곳에서 축제가 열리면 꼭 들러고 싶은 곳이다.
<사진 4> 만항재에서 본 일본잎갈나무(낙엽송)들의 모습 - 우리 나라의 잎갈나무는 백두산 정상 부근에 자생한다.
<사진 5> 천상의 화원이라고 자랑한 야생화 축제 홍보판
<사진 6> 만항재의 일본잎갈나무(낙엽송) 모습
<사진 7> 일본잎갈나무(낙엽송)의 단풍을 보니 유럽의 어느 도시 풍경 같이 느껴진다.
<정암사(淨岩寺)를 돌아보다.>
태백산 정암사는 신라 선덕여왕 14년(서기 645년) 당시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한 절이다. 이 절에는 자장율사가 당나라 산서성에 있는 청량산 운제사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세존의 정골사리, 치아, 불가사, 패엽경 등을 전수하여 선덕여왕 12년에 귀국. 14년(을사년)에 금탑, 은탑, 수마노탑을 쌓고 부처님의 사리와 유물을 봉안하였다. 그래서 정암사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다. 정암사의 옛 이름은 갈래사(葛來寺)였다.
<사진 8> 태백산 정암사의 일주문
<사진 9> 비를 맞고 서 있는 정암사 경내의 백당나무열매가 유난히 눈에 띈다. 보통 절에서는 불두화를 심는데 이 절에서는 백당나무를 심어 열매가 열리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하였다. 절에서 백당나무를 심은 경우는 짧은 소견으로는 처음이다.
<사진 10> 백당나무 열매 모습
<사진 11> 신표로 남긴 주목 지팡이가 싹이 터서 자라다.
이 주목은 약 1300년전 자장율사가 정암사를 창건하고 사용하던 주목나무 주장자(拄杖子)를 꽂아 신표로 남겼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가지 일부가 회생하여 성장하고 있다 전해지고 있다.
<사진 12>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궁 모습 -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느낌을 준다. 부처님 대신 부처님이 앉는 붉은 방석만 있다.
<사진 13> 정암사 경내와 주변에 주목과 오래된 전나무들이 많다.
<사진 14> 내용을 확인하지 못한 비석
<사진 15> 수마노탑으로 올라가는 길에도 전나무가 많다.
<사진 16> 참회나무의 단풍이 아름답다.
<사진 17> 수마노탑 모습 - 이 탑은 모전석재(模塼石材)를 이용한 7층 석탑으로 높이는 9m 정도이다. 탑신을 구성하고 있는 석재는 수성암질의 석회암으로 판석의 길이는 30-40cm, 두께 5-7cm 정도다. 상륜부는 화강암으로 조성한 노반(露盤) 위에 모전석재를 올리고 다시 그 위에 청동제 상륜을 설치한 탑이다. 현재 국가지정 보물 제 410호로 지정되어 있다. .
<사진 18> 수마노탑 모습 - 짜임이 매우 정교하다.
<사진 19> 수마노탑에서 내려다 본 정암사 전경
<사진 20> 주변에는 오래 된 전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다.
<사진 21> 정암사 포대화상 - 포대화상(布袋和尙)이라 불리는 스님이 있었는데, 늘 남에게 얻어먹고 다니는 거지스님이었다. 살림살이라고는 큰 포대 하나 뿐이었고, 무엇이든 눈에 띄면 달라고 하면서 불법을 깨우치고 가르쳤다. 포대화상은 앞 일을 예견하는 힘 또한 대단하여 예견이 틀리는 일이 없었다 한다. 포대화상이 돌아가신 때(916)에는 명주(明州) 악림사(嶽林寺) 똥쪽 행랑채 밑에서 법불을 하면서 앉은채로 입적하였다 전한다.
<사진 22> 정암사에서 올려다 본 수마노탑
<사진 23> 일주문 옆 산과 도로변에도 굵은 전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다.
<사진 24> 오래된 고목과 주변의 모습
<사진 25> 민둥산역내에 자라고 있는 헛개나무도 비를 맞고 있다.
<사진 26> 영월역을 나서니 큰 은단풍나무가 일행을 반겨준다.
<사진 27> 영월군 방절리 산122번지에 있는 선돌은 장엄한 두 갈래의 우뚝 솟은 바위(높이 70m)이다. 영월 서강의 푸른 물과 층암절벽이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한국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선돌 아래의 깊은 소(沼)에는 자라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절벽과 단풍과 안개가 어울리니 신비감마져 돌고 있다.
<사진 28> 선바위가 있는 주변의 절벽에 회양목이 자생하고 있다.
<사진 29> 영월의 청령포에 있는 단종 어가와 행랑채 모습이다. 소나무 숲 사이로 보인다.
<사진 30> 청령포 주변의 모습이다. 서쪽은 산으로 막혔고 나머지 삼면은 물로 둘러싸여 있다. 보이는 소나무 숲이 단종이 귀양을 살던 곳이다. 육지의 섬이다.
<사진 31> 단종의 귀양지 청령포다. 지금은 배로 사람을 실어나른다. 출입 수단이 오직 이 길 밖에 없다.
<사진 32> 단종어소(端宗御所)의 모습이다. 단종어소는 승정원일기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였다. 어소에는 당시 단종이 머물던 본채와 궁녀 및 관노들이 기거하던 행랑채가 있었다. 사진은 비각과 어소.
<사진 33> 단종어소 행랑채의 방 한 칸의 내부 모습
<사진 34> 단종어소 행랑채다. 궁녀와 관노들이 기거하던 곳이다.
<사진 35> 어소 쪽으로 굽은 소나무
<사진 36> 어소 주변의 소나무 숲
<사진 37> 단종애사를 모두 보고 들은 소나무로 관음송(觀音松)이라 부르고 있다. 이 나무의크기는 높이 약 30m, 가슴 높이 둘레 약 5m, 지상 1.2m 되는 지점에서 두 가지로 갈라졌다. 이 나무의 나이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단종이 귀양살이를 할 때 갈라진 나뭇가지에 앉아서 쉬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약 60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사진 38> 단묘재본부시유지비(端廟在本府時遺址碑)
이 곳은 1457년 6월 22일 조선왕조 제6대 임금인 단종대왕이 왕위를 뻬앗기고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降封), 유배(流配) 되었던 곳으로 당시 이 곳에 단종대왕 거처(居處)인 어소가 있었으나 소실(消失)되고 영조 39년(1763)에 이 비를 세워 어소 위치를 전하고 있다. 비의 높이는 162cm로서 1단의 화강석 기단 위에 오석으로 된 비신(碑身)을 세우고 비 앞면에는 「단묘재본부유지비(端廟在本府遺址碑) 」, 뒷면에는「세황명숭정무진기원후삼계미계추체경서영원영수석지명청령포(歲皇明崇禎戊辰紀元後三癸未季秋涕敬書令原營竪石地名淸泠浦)」라 음각되어 있다. 이 비는 비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사진 39> 망향의 동산에 오르는 길 옆엔 산팽나무가 자라고 있다. 언제 부터 여기서 자생했는지?
<사진 40> 노산대 부근에 자라고 있는 피나무의 모습
<사진 41> 노산대에서 자라고 있는 절벽 위의 소나무
<사진 42> 금표비(禁標碑)의 모습
금표비는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되고 유배되어 있은 이 곳을 일반 백성들의 출입과 행동을 제한하기 위하여 영조 2년에 세운 비석이다. 뒷면에는 '동서로 삼백척, 남북 사백구십척, 차후 진흙이 쌓여 생기는 땅도 또한 금지하는데 해당된다.'는 내용이다. 즉 이 안에서는 백성들이 출입하며 활동할 수 없다는 것을 알리는 비석이다.
<사진 43> 선암마을에 있는 한반도 지형을 닮은 땅
※ 감사합니다. 자연의 어우러짐은 삼라만상의 어우러짐입니다. 주로 나무와 풀을 중심으로 꾸며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