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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달성공원과 함께 하는 나무들.

죽림, 대숲, 사라미 2015. 9. 26. 14:47

 

 

           달성공원과 함께 하는 나무들.

 

    1. 날 짜 : 2015년 9월 24일

    2. 동 행 : 자유탐방

    3. 이야기

          대구의 달성은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에 있으며 사적 제62호로 지정되어 있다.

        달성공원의 이름은 옛날 달성이 있었던 자리에 만들어진 공원이라서 붙은 이름이다.

        그 내력을 간단히 살펴보면 대구는 신라 때 달구화현(達句火縣)이라 불렀으며, 통일신라 경덕왕(742-765, 재위)때에 이르러 비로소

        대구현(大邱縣)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달성의 이름은 이 달구화(達句火) 또는 달불성(達弗城)에서 유래된 것이다. 달성은 경주의 월성(月城)처럼 평지에 있는 낮은 구릉을

        이용하여 축성한 것이 특징이다.

        달성은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 이래로 이 지방의 중심세력을 이루고 있던 집단들이 그들의 생활 근거지에 쌓은 성곽(城廓) 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성벽의 이래층 위에는 조개무지 유적이 있고, 목책(木柵)의 흔적도 있다. 따라서 달성은 우리나라 성곽 발달사상 가장

        이른시기에 나타난 형식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신라 첨해왕 15년(261)에 달벌성(達伐城)을 쌓고 나마극종(奈麻克宗)을 성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에 병합된 뒤에는 군사요지로 중시되었으며, 그 후 고려 공양왕(恭讓王) 2년(1390) 토성(土城)에 석축을 더했다.

        조선 선조 29년(1596)에 석축을 더하고 경상감영(慶尙監營)을 이 곳에 둔 일이 있다.

        벽은 주로 흙으로 축조되었고, 주위 길이는 약 1,300m, 높이는 4m 안팍이다. 성벽 상층부에는 큰 돌덩어리들이 군데군데 드러나

        있어 후대에 토성 위에 석축을 가했던 흔적이 남아있다(안내문 참조).

 

    <사진 1>  달성공원 정문의 이름은 시민의 문이다. 다른 곳과 다르게 시민들이 주로 즐기고 살피는 문이라는 뜻이리라.

 

 

    <사진 2>  정문 모습.

 

 

    <사진 3>  달성의 성곽 위에 세워진 관풍루.

                 관풍루(觀風樓)는 조선 선조 34년(1601) 대구에 감영이 설치되면서 선화당의 남쪽 정문인 포정문 위에 세워진 누각이며,

               감사가 이 건물 위에서 세속을 살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 관풍루에는 매일 밤 10시에 문을 닫고, 새벽 5시에 문을 여는 풍악을 울렸는데 이 풍악소리에 맞춰 동서남북 4개 성문을

               열고 닫는 의식절차를 엄숙히 행하였다고 한다.

               1920년경 지금의 달성공원으로 옮겨졌으나 건물이 노후되어 1970년에 해체하였다가 1973년에 복원되었다.

 

 

    <사진 4>  성곽 위의 모습이다. 둘레길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아주 많다.

 

 

    <사진 5>  좀목향도 성곽 위에서 자란다. 늦동이가 꽃을 달고 있다.

 

 

    <사진 6>  좀목향나무의 열매들.

 

 

    <사진 7>  산팽나무가 잘 자라고 있다.

 

 

    <사진 8>  달성은 흙으로 쌓은 토성이다.

 

 

    <사진 9>  말채나무도 여러 그루 보인다.

 

 

    <사진 10>  고욤나무.

 

 

    <사진 11>  오래 자란 이팝나무다. 지름이 70cm 는 넘을 것 같다.

 

 

    <사진 12>  이팝나무의 줄기 모양.

 

 

    <사진 13>  이팝나무의 모양.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