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

97. 전주의 한옥마을에 있는 나무들

죽림, 대숲, 사라미 2013. 2. 7. 15:58

 

     전주의 한옥마을에 있는 나무들

 

    1. 날 짜 : 2013년 2월 6일

    2. 장 소 : 전주 한옥마을

    3. 한옥마을에 대한 이야기

           을사조약(1905년)이후 전주에 들어온 일본인들은 서문 밖, 지금의 다가동 근처의 전주천변에서 살기 시작하였다.

         서문 밖은 주로 천민이나 상인들의 거주지역으로 당시 성안과 성밖은 엄연한 신분의 차이가 있었다. 성곽은 계급의 차이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존재했던

         것이다. 양곡수송을 위해 전군가도(全郡街道)가 개설(1907년)되면서 성곽의 서반부가 강제 철거 되었고, 1911년말에는 남문을 제외한 모든 성곽이

         철거됨으로써  전주부성의 자취는 사라졌다. 그 결과는 일본인들에게 성안으로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며, 실제로 서문 근처에서 행상을

         하던 일본인들이 다가동과 중앙동으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

         이후 1934년까지 3차에 걸친 시구개정(市區改正)에 의하여 전주의 거리가 격자화되고 상권이 형성되면서, 서문일대에서만 번성하던 일본 상인들이

         전주 최대의 상권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1945년까지 계속되었다.

         1930년을 전후로 일본인들의 세력확장에 대한 반발로 한국인들은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는 일본인 주택에 대한 대립의식과 민족적 자긍심의 발로였다. 1930년대에 형성된 교동, 풍남동의 한옥군은 일본식과 대조되고 화산동의 양풍(洋風)

         선교사촌과 학교, 교회당 등과 어울려 기묘한 도시색을 연출하게 되었다.

         오목대에서 바라보면 팔작지붕의 휘영청 늘어진 곡선의 용마루가 즐비한 명물이 바로 교동, 풍남동의 한옥마을인 것이다(이상 전주시청자료 참조)

         이 한옥마을에는 이성계장군이 왜군을 물리치고 서울로 가든중 고향인 이 곳에 잠시 머물렀던 오목대와 전주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위했던 당나무,

         옛부터 자손의 번영과 가문의 번영을 위해 심었던 회화나무를 비롯한 나무들이 옛 역사를 증명이나 해주듯 많이 자라고 있었다.

         특히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신 경기전 안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다.

 

          <사진 1>  겨울에 눈꽃을 피우고 있는 오목대 오르는 길 옆에 자라고 있는 나무들.

 

 

          <사진 2>  우왕의 친필이 있는 비석을 보호하기 위하여 세운 비각 주변에도 눈꽃이 많이 피었다.

 

 

          <사진 3> 나이가 500살도 더 된 당나무인 느티나무가 오목대에 오르는 계단 옆에서 자라고 있다.

 

 

          <사진 4>  경기전 안 마당에 사철나무가 잘 자랐다. 지름이 30cm 정도 되었다.

 

           <사진 5> 경기전 안 마당에 100살도 더된 매화나무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감사합니다. 한옥마을에서 본 것만 소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