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

154. 삼척 궁촌리의 음나무.

죽림, 대숲, 사라미 2014. 6. 28. 22:26

 

       삼척 궁촌리의 음나무.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에는  천연기념물 제363호로 지정된 음나무와 강원도 기념물 제71호로 지정된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의 왕릉이 있는 곳이다. 일설에 의하면 공양왕이 유배 당시 거주하던 움막 뜰 앞에 음나무가 있어 공양왕의 억울한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라 하였고, 공양왕의 시신을 수습하여 후일 장사를 지냈다는 곳이 지금의 왕릉과 두 왕자들이 묻인 곳인데

     후일 이 사실이 밝혀지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무덤을 크게 다시 개축하였다고 전한다.

     그리고 공양왕이 살해된 곳을 지금도 살해재라 부르고 있다. 여기서 공양왕릉과 음나무가 있는 곳의 거리는 약 3km 정도 떨어져

     있어 찾는 사람들이 공양왕릉만 찾고 음나무를 찾는 사람은 없다고 삼척시 문화재해설사 최준선 해설사님이 설명해 주었다.
     이 후로 이 곳을 찾는 사람이 있으면 궁촌리 주차장에 관광안내소가 있는데, 이 곳에 근무하는 관광해설사님을 찾아 공양왕릉과

     음나무 및 해안의 절경을 함께 소개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이 곳의 사실을 소개한다.

 

    1.  삼척 궁촌리 음나무


          이 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63호로 지정된 나무로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에 있다.
        공양왕릉에서 약 3km 정도의 거리에 떨어져 있어서 지나치기가 쉽다.
         높이는 17.5m, 가슴높이의 줄기 둘레는 5.5m, 밑둥 둘레 6.4m, 가지는 동서로 21m, 남북으로 23m, 정도 퍼져 있다.

         줄기는 지상 3m 부근에서 크게 두 갈래로 갈라진 것이 특징이며 나무의 나이는 약 1,000년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을에서는 이 나무를 해치면 피해를 입는다 하여 신성시하고 수호신나무로 여겨 보호하고 있다. 해마다 정월과 단오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데 특히 단오에는 제사를 지낸후 그네뛰기, 널뛰기, 농악놀이 등 단오 잔치를 벌인다고 한다.

        또 이 나무의 잎이 필 때 동쪽 가지가 먼저 피면 영동지방에, 북서쪽 가지가 먼저 피면 영서지방에 풍년이 든다고 전해오고 있다.

        음나무의 주변에는 가슴높이 줄기 둘레 2.9m의 소나무와 가슴 높이 둘레가 1.65m인 향나무가 한 그루씩 자리잡고 있어 이 곳

        옛 거주지로 보인다.

        마을에서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음나무가 있는 곳이 고려 공양왕이 유배(流配) 와서 거주하던 집의 뜰이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주변에 사람들이 거주하는 주택이 있을뿐 당시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사진 1>  천연기념물 제363호로 지정된 음나무의 모습. 앞에 성황탑과 안내판이 서 있다.

 

 

   <사진 2>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음나무 옆에 소나무가 서 있다.

 

 

   <사진 3>  음나무의 가지가 쳐진 것을 지지대로 받쳐주고 있다.

 

 

   <사진 4>  음나무의 수세가 아주 강하다.

 

 

   <사진 5>  음나무 오른쪽에 향나무 한 그루가 같이 자라고 있다.

 

 

   <사진 6>  성황탑 모습.

 

 

 

 

 

    2.  삼척 공양왕릉(恭讓王陵)


           강원도 기념물 제7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있는 곳은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에 있다.
         이 무덤은 일명 궁촌왕릉(宮村王陵)으로 불리고 있는데 고려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과 그의 아들 왕석, 왕우 등 3부자의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다.

         1392년(공양왕 4) 7월 이성계가 왕 위에 오르고 8월에 전왕을 폐하여 공양군으로 봉하고 강원도 원주로 보내서 감시하다가

         다시 왕과 아들 왕석, 왕우를 간성으로 옮겼으나 역시 불안하여 1394년(태조 3) 3월 14일에 3 부자를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로

         귀양지를 옮겼다가 한 달 뒤인 4월 17일에 모두 죽였다.

         공양왕이 이 곳에 귀양와서 죽어 묻혔던 것으로 전해지니 그 후 경기도 고양시 식사리(속칭 언침) 대자산으로 옮겨 갔다고도

         한다. 현재 그 곳에는 공양왕릉과 왕비릉이 사적 제 191호로 저정되어 있다.

         1421년(세종 3) 1월 13일에 공양왕의 왕녀(단양군 이성범의 처)가 임금에게 상소하여 아버지를 공양왕으로, 어머니를 왕비로

         추봉하고 공양왕릉을 정릉(定陵)으로 정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1837년(헌종 3) 가을에 삼척부사 이규헌이 개축하였으며 1977년 당시 삼척군수와 근덕면장의 노력으로 묘소들이 개축,

         보수되어 새롭게 단장되었다.

         이 능(陵)에는 근덕면 봉찬회에서 매년 3월에 날짜를 택하여 제사 지내고 있다.

         앞에서 보아 큰 무덤 3기와 작은 무덤이 1기가 있는데 오른쪽의 큰 무덤은 공양왕릉이고 다음으로 큰 무덤 2기는 공양왕의

         두 아들, 그리고 작은 무덤 1기는 말이나 노비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진 1>  공양왕릉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석축 그리고 앞에서 보아 오른쪽이 공양왕릉이다.

 

 

   <사진 2>  무덤 앞에 상석이 있는 것이 공양왕릉이다.

 

 

   <사진 3>  공양왕릉 옆에 언제 심었는지 모르는 향나무 두 그루가 자라고 있다.

 

 

 

          궁촌리는 바닷가에 위치한 마을로 주변에 아름다운 모래로 유명한 궁촌해수욕장이 있고 현재 국가항으로 지정되어 전체적인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바닷가의 절벽을 배경으로 한 경치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사진 1>  궁촌리 해안의 경치는 매우 아름답다.

 

 

   <사진 2>  궁촌리 해안의 경치.

 

 

   <사진 3>  궁촌리 해안의 경치.

 

 

 

 

       마지막으로 친절하고 자세하게 문화재에 대하여 안내해 주신 최준선 해설사님과 함께 한 컷 !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음나무가 천연기념물이고 또 공양왕과 관련이 있어 공양왕릉을 함께 소개하였습니다. 또 궁촌해수욕장이 유명하여 해안의 경치 까지 소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