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

50. 겨우살이를 찾아 팔공산을 가다.

죽림, 대숲, 사라미 2011. 12. 23. 09:50

 

             겨우살이를 찾아 팔공산을 가다.


   1. 날 짜 : 2011년 12월 12일

   2. 이야기

       지금 까지 팔공산을 여러번 갔었지만 주로 경치와 식물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사실 팔공산은 불교의 자취를 빼고 생각하기란 쉽지 않을 정도로 불교와 깊은 관계가 있는 산으로 서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동화사 시설지구 까지 시내버스가 다니고 있어 접근하기도 쉬운 곳이다. 오늘은 팔공산 아랫 부분을 돌아보면서 전부터 많이 보였던

      겨우살이를 살펴보기로 하였다. 겨우살이는 기생하는 식물이지만 자체에서 양분을 만들기도 하는 겨우살이과의 키가 작은 식물이다.

      겨우살이의 종류는 몇 가지가 있지만 이 곳 팔공산에서 자라는 것은 겨우살이 한 종류 뿐이다. 봄, 여름, 가을은 나뭇잎 때문에 잘 자라지

      못했지만 나뭇잎이 떨어진 겨울에는 햇빛을 잘 받을 있어 꽃을 피우고 열매를 익힌다. 꽃은 2-3월에 피우고, 열매는 10월에서

      12월 까지 익는다. 겨우살이는 암수다른그루로 자란다.

      열매는 끈적이는 성분이 있어 새들이 따먹으면 부리나 몸에 붙어 다른 나무로 옮겨진다. 옮겨진 곳에서 다시 싹이 트고 뿌리를 기생하는

      나무의 줄기에 박고 자라게 된다. 이 곳 겨우살이는 염불암을 오르는 길의 양 옆 산기슭과 동화사 주변의 산기슭, 파계사로 올라가는 길

      옆의 기슭 등지에 많이 자라고 있다. 이 곳에서는 주로 상수리나무나 굴참나무 등에 기생하고 있다.

      멀리서 보기에는 낮은 곳에 기생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가까이에 가 보면 나무의 높은 곳에 있어 자세히 관찰하려면 나무에 올라가야 하는 

      형편이다. 우선 겨우살이와 팔공산에서 보이는 나무를 살펴보고 동화사에 대하여 알아보자.

 

     1. 겨우살이를 중심으로 

 

       <사진 1>  겨우살이가 참나무류에 뿌리를 박고 자라고 있다. 멀리서 보면 흡사 까치집 같이 보인다. 2-3년 사이에 아주 많아졌다.

 

 

       <사진 2>  겨우살이를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본 모양 - 아랫 쪽에 열매가 보인다.

 

 

       <사진 3>  겨우살이와 열매들 - 겨우살이는 암수다른그루인데 이 나무는 암겨우살이인 것 같다.

 

 

       <사진 4>  줄기의 무늬와 꽃이 아름다운 노각나무가 길 옆에 있다.

 

 

       <사진 5>  다릅나무의 줄기 모양이다. 세로로 말리는 경우가 많다.

 

 

       <사진 6>  개벚나무의 줄기다. 옆으로 원을 그리는 띠가 있다.

 

 

       <사진 7>  흔히 낙엽송이라 부르는 나무다. 바른 이름은 일본잎갈나무다. 우리 나라 잎갈나무는 백두산 부근에 자생하고 있다.

 

 

       <사진 8>  물푸레나무가 돌탑 옆에서 자라고 있다.

 

 

       <사진 9>  말벌집이다. 신갈나무 가지에 집을 지었다. 이 벌은 크기는 매우 크지만 집에 들어가는 문은 구멍 하나 뿐이다.

 

 

       <사진 10>  탑골등산로 옆에 서어나무가 자라고 있다. 줄기는 근육이 매우 발달한 것 같다.

 

 

       <사진 11>  염불암 들어가는 길목에 아주 오래된 복장나무 몇 그루가 있다. 단풍이 아름다운 단풍나무과 나무다.

 

 

       <사진 12>  코르크층이 발달한 굴피나무 줄기다. 상수리나무는 코르크층이 발달하지 않았다.

 

 

       <사진 13>  동화사 주차장으로 가는 길 옆에 눈향나무가 있다.

 

 

       <사진 14>  스카이로켓향나무다. 모양이 하늘로 뾰족하게 쭈욱 자란다.

 

 

 

     2. 동화사를 돌아보며

 

       <사진 15>  팔공산에 있는 절과 암자들의 위치

 

 

      동화사(桐華寺)는 봉우리마다 부처님의 미소와 법음이 가득하고 옛 신라의 화랑정신과 통일의 정기가 서린 민족의 영산(靈山)이며

      오악(五岳)의 중심이었던 팔공산(八公山)에 봉황의 기상으로 자리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500여 년 전 신라 21대 소지왕(炤贄王) 15년(493)에 극달화상이 창건했으며, 개산(開山) 당시에는 유가사라 불리었다.

      그 후 신라 42대 흥덕황(興德王) 7년(832) 심지왕사(心地王師)에 의해 당우(堂宇)가 크게 중창되었는데, 당시 겨울인데도 눈 속에서

      오동나무꽃이 상서롭게 피어 동화사로 불리게 되었다.

      임진홰란 때 사명대사가 승군사령부(僧軍司令部)를 설치해 승군을 총지휘했으며, 한 때 영남 일대의 사찰을 관할한 영남도총섭(嶺南

      都摠攝)이었다. 중창 당시 금산사(金山寺), 법주사(法主寺)와 함께 법상종(法相宗)의 3대 사찰이었으며,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의

      26교구 본사 가운데 대구광역시와 경북의 청도, 고령, 성주, 칠곡군 내의 사찰을 관장하고 있는 제9교구 본사이다.

      부속암자로는 비로암, 부도암, 내원암, 양진암, 염불암, 약수암 등이 있으며, 보물인 대웅전(제1563호)을 비롯해 경내에는 마애불좌상

      (제243호), 사명당유정진영(四溟堂惟政眞影 - 제1505호), 목조약사여래좌상복장전적(제1607호) 등 10여 점의 보물과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인 극락전(제11호)을 비롯해 많은 문화유산이 있다.

      팔공산은 관봉갓바위석조여래좌상, 동봉, 서봉 등 마애약사불이 많이 보존되어 있어 약사신앙이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동화사에는 1992년도에 완공된 높이 약33m의 통일약사여래대불이 국민안녕과 민족통일의 염원을 담아 조성되어 약사신앙의

      근본도량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동화사 소개 안내문에서)

 

       <사진 16>  팔공문이다. 동화사의 일주문 역할을 한다.

 

 

       <사진 17>  팔동화사 염불암 마애불좌상 및 보살좌상이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4호로 동구 도학동 산 124-1에 있다.

                    염불암 안에 있는 큰 바위의 서면과 남면에 새겨진 불상으로 여래상과 보살상을 조각하였다.

                    서쪽면의 여래상은 아미타불로 네모난 얼굴에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있다. 연꽃이 새겨진 화려한 대좌에 앉아 있는데

                    대좌의 높이에 비해 무릎 폭이 넓어 안정감이 있다.

                    남쪽면의 보살좌상은 관음보살로 추정되는데 머리에 부채꼴의 화려한 관을 쓰고 있다. 옷은 상의와 하의를 걸치는 일반적인

                    보살과는 달리 왼쪽 어깨에 걸치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방식으로 입고 있다.

                    이 불상들은 간결한 선으로 표현하였으면서도 힘 있는 윤곽을 나타내 고려 초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안내문에서)

 

 

       <사진 18>  동화사 염불암 청석탑(桐華寺 念佛庵 靑石塔)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9호로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산124-1에 있다.

                    청석탑이란 벼루를 만들던 흑색점판암으로 만든 탑으로 이 탑은 화강암인 바닥돌 외에는 모두 점판암을 사용했다.

                    탑의 몸통은 없어지고 10층의 지붕돌만 포개진 채로 남아 있다. 하부 3층과 상부 1층을 제외한 나머지는 파손이 심해 각

                    층마다 빗물받이면에 돌을 괴어 지붕돌받침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막고 있다. 지붕의 두께가 얇고 물이 떨어지는 면은

                    평평하며 네 귀퉁이가 위로 솟아 있어 대단히 경쾌한 느낌을 준다.

 

 

       <사진 19>  동화사 염불암 전경 - 돌에 새긴 부처와 청석탑이 보인다.

 

 

       <사진 20>  동화사 부도암의 부도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4호로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산124-1번지에 있다.

 

 

       <사진 21>  양진암과 내원암 가는 갈림길

 

 

       <사진 22>  동화사 양진암 입구

 

 

       <사진 23>  동화사 양진암의 관음전

                   '양진'이란 너와 내가 둘이 아니리니 그것이 양진공덕(養眞功德)이라 했다. 양진암은 조선조 1743년에 무주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오며, 그 뒤 1898년(광무2년)에 춘파화상이 증수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50여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참선수행

                   정진 중이다(안내문에서)

 

 

       <사진 24>  동화사 내원암의 관음전 모습

 

 

       <사진 25>  동화사 부도암 모습

 

 

       <사진 26>  동화사 비로암과 삼층석탑

                   삼층석탑은 보물 제247호이다.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산124-1번지에 있다.

 

 

       <사진 27>  동화사 대웅전 - 보물 제1563호다.

                    동화사는 신라시대에 처음 지어진 후 오늘에 이르기 까지 8차례에 걸쳐 새로 지었다. 대웅전도 여러 차례 다시 지어

                    지금의 대웅전은 1727년(영조 3년)에서 1732년(영조 8년)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웅전은 절의 가장 중심적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사진 28>  통일범종루의 모습

 

 

       <사진 29>  봉서루(鳳棲樓)와 봉황알의 유래

                    봉황의 정기가 서려져 있다는 의미의 봉서루(鳳棲樓) 앞 바위 위에 올려놓은 3개의 작은 돌을 '봉황알'이라고 부른다.

                    동화사터가 풍수상 '봉소포란형(鳳巢抱卵形 - 봉황이 알을 품은 모습)의 지세이며, 신라 흥덕왕 7년(832년) 심지대사가

                    절을 중창할 때 오동나무꽃이 한겨울에 상서롭게 피었다하여 동화사(桐華寺)로 불리운 것과 관련이 있다.

                    봉황은 태평성대에 나타나며 오동나무에 깃들고, 먹는 것은 대나무 열매만 먹는다는 속설이 있듯이, 절터주변에 오동나무가

                    많고 대웅전 뒤편에 대나무가 많은 것은 스님들의 훌륭한 환경비보책의 하나이면서 봉황과 관련이 있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안내문에서 발췌)

 

 

       <사진 30>  인악대사(仁嶽大師)나무

                   나무의 나이가 약500년 정도 된 이 느티나무는 동화사와 인연이 깊은 인악 스님을 기리기 위하여 '인악대사나무'라

                   이름지었고 동화사 마당에 자라고 있다.

 

 

       <사진 31>  동화사 당간지주(撞竿支柱)

                    보물 제254호로 지정되어 있다. 당간지주는 당간(撞竿)을 지탱하기 위해 당간의 좌우에 세운 돌기둥을 말한다.

                    당간은 당을 달아두는 장대이다. 당은 사찰 입구에 꽂는 기당의 일종으로 사찰에서 기도와 법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당간 꼭대기에 달도록 되어있다. 이 곳의 당간지주는 당간은 없어지고 돌기둥 2개를 66cm 간격으로 벌려서 세운 것만

                    남아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안내문에서 참조)

 

 

       <사진 32>  동화사 약사암 모습

 

 

       <사진 33>  수릉향탄금계 표석(綏陵香炭禁界 標石)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1호로 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 39-1번지에 있다(동화사 시설단지 분수대 옆) 

                   이 표석은 산림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출입금지 구역의 경계를 표시한 것이다. 표석의 수릉향탄금계라는 말에서 수릉은

                   조선시대 현종의 아버지인 익종의 능을 말하고 향탄은 왕릉의 유지관리에 쓰이는 나무 숯을 말하며, 금계는 출입금지

                   구역의 경계를 뜻한다. 그러므로 이 표석은 수릉에 사용되는 나무 숯의 생산을 위해 산림을 보호해야 하므로 일반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뜻을 담은 것이다. 이러한 표석은 이 곳과 가까운 수태골에 하나가 더 있다(안내문 참조)

                  

 

       <사진 34>  동화사 통일약사여래대불상(부처님의 오른 쪽)

                   통일대불의 양 쪽에 석탑이 있다. 앞에서 보면 그 가운데에 부처님이 자리하고 있다. 그 둘레에는 부조로 불상들이 조각되어

                   있다.

 

 

       <사진 35>  동화사 통일약사여래대불상(부처님의 왼 쪽)

 

 

 

 

     감사합니다. 보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