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

54. 경주 양동(良洞)마을과 나무들

죽림, 대숲, 사라미 2012. 1. 20. 22:14

 

          경주 양동(良洞)마을과 나무들


 

        양동마을은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6번지에 있으며 현재 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되어 있다.
      양동마을은 설창산(雪蒼山)을 주봉으로 하여 ‘물(勿)’자 모양으로 뻗어내린 세 구릉과 계곡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마을은 상류층 양반들이 대대로 살아온 곳으로 조선시대 가옥 150여채가 잘 보존되어 있다. 이 가운데 종가나 큰 기와집은 대체로

      높은 곳에 있고 초가집은 평지에 있다.

      이 마을에서 조선시대 청백리인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과 성리학자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을 비롯하여 많은 인물들이 배출되었고

      2010년 7월 31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역사마을에 등재되었다. 이 마을에는 현재 국보1, 보물4, 중요민속자료12, 유형문화재2,

    기념물1, 민속자료1, 문화재자료1, 향토문화재2 점이 있다. (안내자료에서)

      지금 까지 살펴 본 결과로는 옛 고택이 있는 곳에는 당시에 심어서 키운 오래된 나무들이 지금도 잘 자라고 있음을 종종 볼 수 있다.

      오늘 살펴 본 양동 마을에도 예외없이 오래된 나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비록 모든 나무들이 천연기념물이나 자료로는 지정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오래된 나무들이 많다.
      이 점으로 볼 때 우리의 선조들도 나무를 아끼고 즐길 줄 아는 운치 있는 생활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오늘 양동마을을 돌아보면서 오래된 나무로 자라고 있는 나무들을 찾아보았다.

 

 

      1. 관가정(觀稼亭)

           보물 제 442호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150번지
           조선 중종(1506-1544)때 청백리로 이조판서를 지낸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 1463-1529) 선생이 1514년 대사간 재직시 나라의

           잘못된 인사정책을 바로 잡고자 여러번 올린 상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낙향하여 곡식이 자라는 기쁨을 보는 것처럼 자손과 후진을

           양성하기 위하여 지은 집이다.

           동북편에 양민공 손소의 영정을 모신 영당이 있으며 격식을 갖추어 간결하게 지은 이 집은 특이하게 대문이 사랑채와 연결되어 있어

           조선 중기의 남부지방 주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한 눈에 들어오는 형산강과 경주를 품어 안는 광경이 일품이다.

           1981년 보수 때 주위에 담장을 쌓고 일각대문을 내었다. 건물의 평면구조는 사랑채와 안채가 ‘ㅁ’자 형을 이루는데, 가운데의 마당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사랑채, 나머지는 안채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 1>  관가정을 올라가는 길 옆에 오래된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다. 동네 가운데에 큰 나무는 마을의 오랜 역사를 알고 있겠지.

 

 

      <사진 2>  관가정(觀稼亭) - 관가정에 올라서면 앞이 훤하게 틔어서 잘 보이는 위치다. 주로 농사일을 하는 일군들을 살펴볼 수 있는

                 위치에 지었으나, 후일에는 후진을 양성하는 곳으로 활용되었다.

 

 

 

      <사진 3>  관가정 마당에 심어진 향나무다. 특이한 것은 향나무의 줄기에 껍질이 없이 매끈하다는 점이다. 뿌리 부분에는 약간 흠이 있으나

                 자라는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사진 4>  관가정 서쪽 화단에 심어진 향나무 - 외과적 수술은 받았으나 자람이 왕성하다.

 

 

      <사진 5>  이 향나무는 수나무인 것 같다. 향나무는 암수다른그루의 나무다.

 

 

      <사진 6>  다른 방향에서 본 향나무의 줄기다. 올해가 용띠인데 용틀임을 하는 모양 같다.

 

 

      <사진 7>  담장을 넘어서 누워 자라는 향나무 모습 - 향나무의 껍질이 보이지 않는다.

 

 

      <사진 8>  향나무의 수꽃

 

 

 

 

 

 

 

      2. 서백당((書白堂)

            중요민속자료 제 23호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223번지
           송첨(松簷)이라고도 불리는 이 집은 이 마을 입향조인 양민공(襄敏公) 손소(孫昭)가 지은 월성손씨의 종가집으로 우리 나라의 종가집

           가운데 가장 규모와 격식을 갖춘 대가옥이다.

           서백당(書百堂) 또는 송첨(松簷)이라 부르며 서백당(書百堂)은 하루에 '참을 인(忍)자를 백 번 쓴다'는 뜻이며 근래에 와서 굳어진

           당호(堂號)이다.

           집 터를 잡아 준 풍수가 ‘설창산(雪蒼山)의 혈맥이 응집된 이 터에서 세 명의 위대한 인물이 태어나리라’ 예언했다 하는데 손소공의

           둘째 아들로서 명신이자 청백리로 상주(尙州) 주민들이 생사당(生祠堂)을 지어 모셨던 경절공 우재 손중돈 선생과 그의 생질이 되는

           문원공 회재 이언적 선생이 이 곳 외가에서 태어났고, 한 분은 아직 미탄생이라 한다.

           요즈음도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사랑채 마당에 서면 경관이 빼어나 평화와 행복의 요럼처럼 느껴진다.

           조선초기 양반집의 일반적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종가(宗家)로서의 규모와 격식을 갖추고 있는 큰 가옥이다.

 

           사당 앞에 있는 향나무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진 9>  서백당 표지석이 입구에 서 있다.

 

 

      <사진 10>  서백당 집 앞 - 대문 앞

 

 

      <사진 11>  서백당 모습

 

 

      <사진 12>  서백당의 향나무다. 사당 앞에 있으며 경상북도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나이는 600년이 넘는다고 한다.

                   높이 9m, 둘레 2.92m, 가지 길이는 사방 6m내외이다. 이 나무는 일반 향나무처럼 곧게 자라지 않고 분재처럼 주간(主幹)과

                      가지가 꾸불꾸불 꼬이고 서쪽 방향으로 널리 퍼져서 수세가(樹勢)가 왕성하다. 주간은 지상 90cm 높이에서 동, 남, 북 방향으로

                   가지를 낸 뒤 다시 꾸불꾸불 위로 자라서 세 가지를 내고 있다. 이 나무는 손소(孫昭, 1433-1484)가 조선 세조 2년(1456) 집을

                   새로 짓고 그 기념으로 심은 것이라 한다.

 

 

      <사진 13>  서백당의 향나무 - 바른 이름은 '양동의 향나무'다.(良洞의 香木)

 

 

      <사진 14>  다른 방향에서 본 양동의 향나무

 

 

      <사진 15>  서백당 뜰 앞에 있는 개비자나무

 

 

      <사진 16>  뜰 앞에 있는 치자나무 모습

 

 

      <사진 17>  낙선당 모습

 

 

      <사진 18>  낙선당 마당에 있는 치자나무의 모습 - 치자를 따고 난 모습

 

 

      <사진 19>  치자가 익어서 달려 있는 모습 - 고택의 정원에서 치자나무가 자주 눈에 띈다.

 

 

 

 

      3. 무첨당(無忝堂)

          보물 제 411호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181번지
          이 집은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며 문신이었던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 선생의 종가 별채로 세운 건물이다.

          이 집은 상류 주택에 속해 있는 사랑채의 연장건물로 불천위 제사, 손님 접대, 휴식, 책 읽기 등 여러 용도로 쓰이던 곳이다.

 

 

      4. 향단(香壇)

           보물 제 412호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135번지
          이 건물은 조전시대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 선생이 경상감사(慶尙監司)로 있을 때 모친의 병 간호를 하도록 중종(中宗) 임금이

          지어준 집이다.

          두 곳에 뜰을 두고 안채, 사랑채, 행랑채를 붙여 전체가 ‘흥(興)’자 모양을 이루어 독특한 평면 형태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사가(私家)로서 건물 전체에 둥근 기둥을 사용하여 상류층 주택의 격식을 갖추었다. 원래 99칸이었다고 전하나 일부는

          불에 타 없어지고 현재 56칸이 보존되고 있다.

          이 건물은 마을 전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위치와 모습에서 상류주택의 일반적 격식에서 조금 벗어난 면도 가지고 있으며

          주생활(住生活)의 합리화를 도모한 우수한 건물이다.

 

      5. 상춘헌

 

      <사진 20>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의 담을 타고 향나무가 자라고 있다. 강직한 나무결이 더욱 돋보인다.

 

 

      <사진 21>  밑둥치 쪽에서 본 향나무의 자태

 

 

      <사진 22>  담을 경계로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는 나무들의 자태가 정답다.

 

 

 

      6. 심수정

 

      <사진 23>  심수정 역시 오래된 나무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7. 보호수

 

      <사진 24>  성주산방 마당에 있는 보호수다. 수령은 250년이 넘었고 둘레는 2m 가 더 된다. 나무의 높이는 20m 가 훨씬 넘는 회화나무다.

                   큰 인물이 태어나기를 기원하며 심은 조상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8. 경주양동초등학교

 

      <사진 25>  양동마을에 있는 학교 답게 주변을 가꾸었다. 지붕을 비롯한 전체 환경이 마을에 어울리게 하느라 힘을 많이 기울였다.

                   넓은 운동장과 주변을 가꾸고 있는 양버즘나무들과 메타세콰이아나무들이 줄 지어 서 있다. 아쉽다면 양동마을이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된 마당에 좀 더 나무들도 우리답게 가꾸어 나갔으면 더욱 빛나지 않았겠는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감사합니다. 나무와 건물 모두 우리의 귀중한 유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