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의 구형왕릉(仇衡王陵)을 찾아서.
1. 날 짜 : 2014년 2월 4일
2. 동 행 : 예임회 회원
3. 이야기
오늘은 가락국 10대 왕인 구형왕과 구형왕비의 위폐가 모셔진 덕양전과 우리 나라에서 유일한 돌무덤인 구형왕릉을 돌아보았다.
이 구형왕의 무덤을 둘러싸고 두 가지 설이 존재하는데, ‘석탑’이라는 설(說)과 ‘왕릉’이라는 설(說)이다.
탑으로 보는 이유는 이와 비슷한 탑이 안동과 의성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방단형적석탑과 거의 비슷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고,
왕릉으로 보는 근거는 ‘동국여지승람’과 ‘산음현 산천조’에 나타난 ‘현의 40리 산중에 돌로 쌓은 구룡이 있는데 4면에 모두 층급이 있고
세속에는 왕릉이라 전한다’라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이 무덤에 왕릉을 붙인 근거는, 1798년 민경원이라는 유생이 무덤의 서쪽에 있는 '왕산사(王山寺)'에서 나무로 된 궤짝을 발견하였는데
그 궤짝을 열어보았더니 구형왕과 왕비의 영정, 옷 그리고 활과 칼 같은 유물이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명승 탄영의 '왕산사기'가 함께
나와서 이를 고증하여 왕릉을 다시 찾게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 덕양전(德讓殿) >
‘덕양전’(德讓殿)은 구형왕과 그 왕비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경남문화재자료 제50호로 지정되어 있다.
가락국 제10대 왕인 구형왕(仇衡王을 나라를 넘겨준 왕이란 의미로 讓王이라 불렸다)과 왕비, 두 분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양왕은 532년 신라 법흥왕19년(가락기원 491년) 나라를 신라에 넘겨주고 이곳 왕산 수정궁으로 옮겨와 5년후 생을 마쳤다 한다.
그후 향화를 계속하다 전화로 중단되었으며 서기 1798년 심릉후 능하에 능침을 짓고 다시 향례를 올렸다.
서기 1898년 숭선전(김해수로왕 능침)이 사액됨과 동시에 덕양전으로 개칭하여 1930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고 1991년 문화재
정화사업에 의하여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진 1> 덕양전 정문 앞에 홍살문이 있다.
<사진 2> 덕양전 앞에서.
<사진 3> 담장에 오른 마삭줄인지 아니면 다른?
<사진 4> 마당에 자라는 잘 자란 가시나무 한 그루.
<사진 5> 덕양전 앞 마당에서 자라는 큰 가시나무 한 그루.
< 구형왕릉(仇衡王陵) >
사적 제214호인 ‘전구형왕릉’(傳仇衡王陵)은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산 16번지에 있다.
구형왕릉 앞에 전(傳)자가 붙은 이유는 그의 능이라는 확증이 없고, 단지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야의 마지막 왕인 제10대 구형왕이 묻혀있다는 (전)구형왕릉은 일반 왕능과는 전혀 다른 특이한 형태로서 무엇보다도 돌로 쌓은
석총(돌무덤)이라는 점이 관심을 끈다.
구형왕릉은 일반 무덤과는 달리 가파른 산비탈에 주변의 막돌과 깬돌을 계단식으로 층층이 쌓아올렸으며, 총 높이 7.15m,
둘레가100여m나 되는 기단식 석단을 이루고 있다.
구형왕은 신라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장군의 증조부이다. 521년 가야국의 왕으로 올라 532년 신라 법흥왕에게 영토를 넘겨줄 때까지
11년간 왕으로 있었다.
구형왕은 밀양의 이궁대에서 신라 법흥왕에게 선양의 절차를 마친 뒤(가락국 기원으로는 491년) 낙동강을 지나 이곳 왕산의 태왕궁으로
들어와 은거하다 5년후 세상을 떠난 것으로 “삼국사기”“삼국유사” 등을 인용한 “가락국2000년사”에 기록돼 있다.
구형왕릉 입구에서 왼쪽으로 왕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를 따라 1.8km 올라가면 허준의 스승으로 알려진 유의태 샘터가 있다.
이곳 산청 상정마을 출신인 유의태가 샘터의 물을 길어 약재를 달였다고 전해지는데, 위장병과 피부병 등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약수터 인근에는 역대 가락국 왕들이 이곳 왕산 기슭 엄천강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별궁인 태왕궁(太王宮,별칭으로 水晶宮)을 세워 놓고
왕족들이 자주 찾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구형왕도 이곳에서 여생을 마쳤다고 전해진다.
<사진 6> 나라에서 지정한 사적지임을 알리는 안내판.
<사진 7> 현재 왕릉 앞에 세워진 안내판이다. 안내판에 글자 한 자가 지워져 있다. .
<사진 8> 이 사진은 전에 있었던 안내판과 현재의 '전(傳)자가 지워진 안내판을 비교한 자료가 있어 참고로 제시하였다.
<사진 9> 구형왕릉의 전경이다. 역시 홍살문이 서 있다.
<사진 10> 우리 나라에 있는 유일한 돌무덤이다. 앞에 있는 석물들은 김해 김씨 문중에서 근래에 세운 것들이다.
<사진 11> 왕릉 앞에는 '가락국양왕릉(駕洛國讓王陵)'이란 비석이 서 있다.
<사진 12> 문인석과 무인석이 양쪽에 서 있고 석등도 세워져 있다. 김해 김씨 문중에서 근래에 세운 것이다.
<사진 13> 돌무덤을 높이 약 1m 높이로 돌담으로 쌓았다.
<사진 14> 옆에서 보면 돌계단 형식으로 되어 있다.
<사진 15> 윗 부분은 둥근 원형으로 마무리 되었다.
<사진 16> 능 주변을 돌로 쌓았다. 윗쪽에 소나무와 편백나무들이 보인다 .
<사진 17> 삼나무도 몇 그루 보인다.
※ 감사합니다. 이 자료는 지름 까지 알려진 자료들을 참고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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