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문은 넓게

52. 남한산성을 돌아보다.

죽림, 대숲, 사라미 2016. 5. 20. 12:47



           남한산성을 돌아보다.


    1. 날 짜 : 2016년  5월  18일

    2. 동 행 : 예임회 제395회 정기모임일

    3. 이야기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시, 성남시, 하남시에 걸쳐 있는 남한산을 중심으로 하는 산성이다.

        오전 8시 경에 시내를 벗어난 버스는 오전 11시를 조금 넘겨 남한산성 중앙주차장에 도찹하였다. 오늘 돌아본 경로는

          주차장 - 동문 - 망월사 - 장경사 - 제3암문 - 북문지터 - 서문 - 수어장대 - 남문 - 남한산성행궁

        을 돌아보는 순서로 모든 활동을 마치고 오후 3시에 대구로 출발하였다.

        남한산성을 돌아보면서 나라가 있어야 모든 국민들이 안심하고 행복하게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되뇌이면서 위정자들의 자세가

        한 나라의 흥망성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을 절감한 하루였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는데 지금 쯤 얼마나 갔는지 모두가 반성할 일이다.

        <남한산성에 대한 안내문을 옮겨 보았다>

          남한산성은 사적 제57호로 지정된 산성이다.

        조선시대 뿐 아니라 삼국시대부터 천연의 요새로 중요한 역할을 하던 곳으로 백제의 시조인 온조의 왕성이었다는 기록이 있고,,

        나당전쟁이 한창이던 신라 문무왕 12년에 한산주에 쌓은 주장성이라는 기록도 있다. 고려시대에는 몽고의 침입을 격퇴한 곳이기도

        하고 일제강점기엔 항일운동의 거점이 되기도 한 곳이다.

        그러나 남한산성은 주로 병자호란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조선 인조 14년에 청나라가 침략해오자 왕은 이 곳으로 피신하여 항전하였으나, 왕자들이 피신해 있던 강화도가 함락되고 패색이

        짙어지자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에 나가 치욕적인 항복을 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남한산성은 패배를 알지 못하는 곳이다.

        성의 외부는 급경사를 이루어 적의 접근이 어렵고 내부는 경사가 완만하여 넓은 경작지와 물을 갖춘 천혜의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에

        병자호란 당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청군에 함락당하지 않고 47일이나 항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오랜 기간동안 우여곡절을

        가진 성의 역사처럼 성곽의 형태 또한 단순하지 않아서 하나의 폐곡선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본성, 봉암성, 한봉성, 신남성과

        5개의 옹성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구조이다.

        인조 4년에 중앙부의 가장 큰 폐곡선인 본성이 완성되었고 병자호란 이후 방어력을 높이기 위하여 동쪽의 봉암성, 한봉성 등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 증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에 되었다.(이상은 안내문에서 참조)



     <사진 1>  오늘 돌아본 길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개하고자 한다.



     <사진 2>  이 부근에 동문이 있는데 미처 살피지 못하였다.



     <사진 3>  망월사 입구다. 양옆으로 나무들이 우거져 더욱 푸른 5월이 되었다.



     <사진 4>  망월사 일주문.



     <사진 5>  망월사 앞에 있는 황목련나무.



     <사진 6>  망월사 전경.



     <사진 7>  대웅보전과 경내의 모습.



     <사진 8>  주변에 쪽동백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다.



     <사진 9>  망월사에서 나오면 장경사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사진 10>  이게 무슨 나무인가?



     <사진 11>  장경사 일주문.



     <사진 12>  서어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사진 13>  장경사 전경.



     <사진 14>  장경사 전경.



     <사진 15>  장경사에서 나오면 만나는 산성.



     <사진 16>  제3암문(봉암성암문)



     <사진 17>  성을 따라 간다.



     <사진 18>  제4암문(暗門)이다.

                 암문은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성문으로 일종의 비밀통로이기 때문에 크기도 작고, 적에게 쉽게 식별될 수 있는

                 시설도 설치하지 않았다. 이 암문은 북문의 보조기능을 하도록 설치한 것이다.



     <사진 19>  산성의 모습.



     <사진 20>  이름 모를 꽃도 피고.



     <사진 21>  이렇게 성을 따라 간다.



     <사진 22>  여기에 가래나무가 자라고 있다.



     <사진 23>  북문의 모습.



     <사진 24>  북문을 지나면.



     <사진 25>  산딸나무도 보이고.



     <사진 26>  복장나무로 보이는 나무.



     <사진 27>  왕머루덩굴.



     <사진 28>  북장대가 있었던 자리.



     <사진 29>  피나무도 보인다.



     <사진 30>  성을 따라야 하는데.



     <사진 31>  우익문(서문)은 보수중.

              우익문은 사적 제57호로 지정되어 있다.

              서문은 산성의 북동쪽 모서리 부분의 해발 450m 지점에 위치하며 개구부와 문루로 구성되어 있다. 개구부는 내외면이 반원형

              홍예식이다. 외면 홍예 안쪽에는 2짝의 목재 판문을 설치하였다.

              판문의 문짝에는 방형 철엽을 서로 겹치도록 부착하였다. 대문을 지탱하는 문지두리는 석재로 위, 아래에서 지탱하도록 되어있고,

              양측벽에는 장군목을 끼워 빗장을 지를 수 있도록 장방형 홈을 파놓았다. 서쪽 사면의 경사가 급해 이 곳에서 물자를 이송하기는

              어렵지만 광나루나 송파나루 방변에서 산성으로 진입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서문은 산성의 초축시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정조 3년 개축하여 우익문(右翼門)이라 칭하였다.




     <사진 32>  산성 모습.



     <사진 33>  이런 곳도 있다.



     <사진 34>  소나무 그늘도 있고.



     <사진 35>  성의 외벽 모습.



     <사진 36>  수어장대(守禦將臺).

                 수어장대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이다.

                 수어장대는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에서 지은 누각이다. 남한산성에 있던 5개의 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있으며,

                 성 안에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다. 인조 2년 남한산성 축성 때 단층으로 지어 서장대라 불리던 것을

                 영조 27년 유수 이기진이 왕명을 받아 2층으로 다시 짓고 '수어장대(守禦將臺) 라는 편액을 달았다.

                 수어장대 2층 내부에는  '무망루(無忘樓)라는 편액이 달려 있었는데,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8년 간 청나라에 불모로

                 잡혀갔다가 귀국하여 북벌을 이루지 못하고 승하한 효종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영조가 지은 것이다.

                 현재 무망루 편액은 수어장대 오른편에 보호각을 지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보관하고 있다.



     <사진 39>  수어장대 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향나무.



     <사진 40>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신 '리승만 대통령 각하 행차 기념식수비'



     <사진 41>  큰 바위에 새긴 '수어장대'



     <사진 42>  오른쪽 전나무가 기념식수한 나무.



     <사진 43>  지화문(至和門 - 남문) 밖에 보호수가 몇 그루 있다.



     <사진 44>  느티나무 보호수.



     <사진 45>  지화문 내력.



     <사진 46>  지화문 모습.



     <사진 47>  귀룽나무가 많이 보인다.



     <사진 48>  높이 자란 귀룽나무.



     <사진 49>  도로변에는 층층나무가 꽃을.



     <사진 50>  남한산성행궁 모습.



     <사진 51>  남한산성행궁 모습.



     <사진 52>  '이위정' 모습.

                 이위정은 현재 좌승당 뒤편 후원에 2010년 중건되었다. 순조 17년 광주부 유수 심상규가 활을 쏘기 위해 세운 정자다.



     <사진 53>  붓꽃이 화려하게 피었다.



     <사진 54>  남한산성 종각의 천흥사 동종.

                 남한산성 종각의 천흥사 동종은 높이 170cm, 입지름 100cm 로 뭄체에 새겨진 명문에 따르면 고려 현종 1년(1010)에

                 주조된 것으로 원래는 태조 4년(921)에 태조가 창건한 충충남도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 천흥사에 있었다고 한다. 

                 언제 남한산성으로 옮겨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 산성내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였다.



     <사진 55>  광장에 세워진 신익희 선생 동상.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