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

231. 곽재우 장군나무와 곽준 선생나무를 찾아서.

죽림, 대숲, 사라미 2016. 11. 5. 13:39

 

           곽재우 장군나무와 곽준 선생나무를 찾아서.

 

    1. 날 짜 : 2016년 11월 3일

    2. 동 행 : 자유탐방

    3. 이야기.

         곽재우 장군나무와 곽준 선생나무는 달성군 유가면 가태리 예연서원이 있는 마을에 있는 나무로 나라를 위한 우국충정이 깃든

        인물들을 기리기 위한 나무들이다. 그래서 두 인물과 관련이 있는 예연서원(禮淵書院)을 함께 소개하는 것이 이해를 돕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예연서원(禮淵書院)>

 

          예연서원에 들어가는 앞문이다. 이름은 숭의문.

 

 


         이 서원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망우당 곽재우 장군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하여 선생 서거 이듬해인 1618년  광해군 10년

        현풍 유림들이 현 위치에 충현사를 건립한 데서 비롯되었다.

        1674년 현종 15년 정월 당시 현풍 현감인 류천지(柳千之)가 규모를 확장. 서원으로 개칭하고 같은 해 7월 존재 곽준(存齋 郭䞭)

        선생을 배향하였다.

        1677년 숙종 3년에 예연서원으로 사액되었으며, 6.25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정부계획에 의하여 1977-1986년에 걸쳐 복원하였다.

        이 서원은 여느 서원처럼 맨 위쪽에 두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를 드리는 사당인 충현사(忠賢祠)가 있고, 그 앞쪽에는 학생들을

        교육하는 강당인 경의당(景義堂)이 있으며, 부속 건물로는 전사청(典祀廳), 장판각(藏版閣) 등이 있다.

        지금 걸린 서원과 사당의 현판 글씨는 복원에 대비하여 1958년 우남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미리 써 준 것이라 한다.

 

 

 

       <홍의장군(紅衣將軍) 신도비(神道碑)와 충렬공(忠烈公) 신도비(神道碑)>


         있는 곳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가태리 585번지다.

        홍의장군 신도비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국난 극복에 큰 공을 세웠던 홍의장군

        망우당 곽재우 선생의 업적을 기록한 비다.

 

         충렬공 신도비는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안음 현감으로 재직하면서 경남 함양의 황석산성을 지키다가 순절한 충렬공 곽준

        선생의 업적을 기록한 비다.

 

         곽재우(1552-1617) 선생의 신도비는 1761년(영조 37)에 이 곳에 건립되었으며, 곽준(1551-1597) 선생의 신도비는 1634년

        (인조 12)에 현풍 대리(소레마을)에 세웠던 것을 곽재우 선생의 신도비를 건립하면서 이 곳으로 옮겨 함께 모시게 되었다.

 

 

 

        ‘땀 흘리는 신도비‘ 이야기


         곽재우, 곽준 신도비는 ‘땀 흘리는 신도비’로도 유명하다.
        비각이 비를 맞는 곳도 아닌데 국란이 있을 때 두 분의 비신에는 땀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2006년 2월 14일에는 신도비가 땀을 흘린다는 주민들의 신고가 유가면사무소에 들어와 확인 결과 두 비석의 표면에 수십개의

        물줄기와 물방울, 물기 등이 발견되었다한다.

        동네 노인들의 말에 의하면 한일합방 때, 2차대전 때, 6.25한국전쟁 때도 땀이 났으며, 전쟁중에 신도비가 소실되어

        다시 복구하였는데도 4.19와 5.16 때도 땀이 났었다고 전한다.

 

 

 

       <곽재우 장군나무>

 

      ●  있는 곳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가태리 982. 신도비가 있는 비각 앞에 자리하고 있다.
      ●  1982년 10월 29일 보호수로 지정되었다(고유번호 8-7)
      ●  나무종류 : 느티나무

 

 

      ●  나무의 나이 : 400년 정도.
      ●  나무의 크기 : 키는 약 15m 정도, 둘레 : 398cm 정도.
      ●  곽재우(1552-1617) 장군은 외가인 경상남도 의령에서 태아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켜 현풍, 창녕, 진주 까지 작전지역으로 삼고 스스로 홍의장군이라 하며 밝은 지리를

          이용하여 위장전술과 유격전을 펼쳐 적을 섬멸하는 전법으로 많은 전공을 세웠다.
          돌아가신후 예연서원(禮淵書院)이 세워지고 숙종 35년(1709) 병조판서겸지의금부사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서원앞을 수문장처럼 지키고 서 있는 수령 400년 정도 된 이 느티나무는 임진왜란 때 신출귀몰한 전략과 전술로 가는 곳마다 왜군을

          무찔러 대승을 거둔 장군을 기리기 위하여 ‘곽재우(郭再祐) 장군나무’라 이름 지었다.

 

 

 

 

 

       <곽준 선생나무>


      ●  있는 곳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가태리 571
      ●  2000년 10월 18일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으며 고유번호는 8-58이다.
      ●  나무의 종류 : 은행나무로 예연서원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다.

 

 



      ●  나무의 나이 : 약 300년 정도.
      ●  나무의 크기 : 키는 약 20m, 나무둘레는 314cm 정도.
      ●  곽준(1551-1597) 선생의 본관은 현풍(玄風), 호는 존재(存齋)이며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투에 참가하여 많은 공을 세웠으며, 정유재란(丁酉再亂)때는 영남과 호남의 길목인 함양의

          황석산성(黃石山城)에서 왜군과 격전을 벌이다가 아들 이상(履常), 이후(履厚)와 함께 장렬히 전사하였다.

          그 뒤 병조참의에 추증되고 1618년(광해군 10) 건립된 예연서원에 봉안되었다.

          수령이 300년 정도된 이 은행나무는 본인은 물론 두 아들과 며느리 까지 함께 전사하여 일문삼강(一門三綱)을 이룬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곽준나무’라 이름지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