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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경북 칠곡 매원마을에서.

죽림, 대숲, 사라미 2019. 3. 10. 10:47



           경북 칠곡 매원마을에서.


   1. 날 짜 : 2019년 2월 27일

   2. 동 행 : 나미회.

   3. 이야기

       조선시대 영남의 3대 반촌을 들라면 안동 하회마을, 경주의 양동마을 그리고 칠곡의 매원마을을 꼽았다고 하는 역사가 깊고 유명한 고장

       칠곡 매원마을을 찾았다. 한말에는 매원마을이 400호를 넘을 정도로 번창하였는데 6.25 한국전쟁의 격전지였던 탓에 현재는 약 60여호의

       집들이 있다고 한다.

       그것도 낙동강을 사이에 둔 치열한 전투로 인하여 집중 피해를 당해 성한 집이 별로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어있다. 하루 빨리 옛 보습을 되

       찾을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마을을 돌아보았다. 매원마을을 찾는 이들 대부분이 해은고택을 찾곤 하지만 오늘은 마을 전체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그러던 중 특히 인상깊게 보인 것은 마을에 잘 자란 나무들이 많았는데, 특히 소나무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이 마을은 광주(廣州) 이씨들의 집성촌으로 6.25전쟁 때 폭격으로 무엇 하나 건지지 못했다는 종가(宗家)와 현 정부의 이낙연 국무총리의

       방문과 당시 기념식수로 심은 노간주 나무도 살펴보았다. 또 이 마을에는 매화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는데 아쉽게도 순을 너무 많이 잘라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한 점도 있었다.

       이 글을 올리는 오늘이 삼일절 이튿날이다. 한 가지 남기고 싶은 말은 나라의 꽃인 무궁화를 많이 심어서 이 매원마을에도 무궁화가 활짝 피

       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오늘 본 내용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매원마을의 역사>

        매원마을은 500년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선비의 고장이다.

       조선시대에는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 칠곡 매원마을을 일컬어 영남의 3대 반촌으로 통했다.

       매원마을에는 원래 야로 송씨가, 그 다음은 벽진 이씨가 주류를 이루고 살았다. 이어 1595(선조27)경 매원마을은 광주(廣州) 이씨가

       입촌하면서부터 집성촌을 이루게 된다.

       1905년경에는 최대 번성기로 400여 가구가 살았다. 마을 맨 위쪽을 상매라 하고 중간을 중매, 아래를 서매(하매)라 부른다.

       풍수 지리적으로 매원마을은 매화낙지형(梅花落地形 - 매화가 떨어진 모양)이라고 했다(자료에서) 


       <사진 1>  매원마을 안내판.



       <사진 2> 해은고택(海隱故宅) 

            해은고택(경북문화재자료 제275호)은 매원마을의 여러 고택 중에서 건립 연대가 가장 오래되고 규모도 잘 갖추어진 집이다

            이동유가 정조 12년(1788)에 건립했고, 사랑채는 순조 16년(1816)에 건립,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진 3> 해은고택을 들어서며.



       <사진 4> 해은고택 모습.



       <사진 5> 담장 곁에서 자라고 있는 향나무.



       <사진 6> 보호수로 지정되어 자라는 회화나무 한 그루.



       <사진 7> 보호수인 회화나무.



       <사진 8> 보호수 표석.



       <사진 9> <종가댁을 찾다>



       <사진 10> 흔적도 없었던 이 터에 다시 세운 종택 모습.



       <사진 11> 기념식수한 노간주나무는 잘 자라고 있다. 우리나라 나무라서 노간주나무를 심었다 한다.



       <사진 12> 무궁화나무가 무럭무럭 자라서 큰 나무로 자랐으면 !



       <사진 13> 그래도 사당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니 다행중 다행. 종택 옆에 자리하고 있다.



       <사진 14> 국가유공자의 집. 이 집도 반듯하게 다시 지었으면 좋으련마는.



       <사진 15> 국가유공자의 집.



       <사진 16> 독랍유공자의 생가도 있다.



       <사진 17> 독립유공자 생가의 내역.



       <사진 18> 집 마당에는 매화가 만발하였다.



       <사진 19> 독립유공자 생가 모습.



       <사진 20> 사철 변함없음을 말해주듯 사철나무는 잘 자라고 있다.



       <사진 21>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흙담장이 참으로 아름답다.



       <사진 22> 담 너머 까지 크게 자란 치자나무 한 그루.



       <사진 23> 집 가까이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소나무들.



       <사진 24> 이 나무는 천황나무로 모시는 나무.



       <사진 25> 천왕나무의 모습.



       <사진 26> 큰 나무들을 마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정성껏 가꾸고 있다.



       <사진 27> 새봄을 알리는 산수유나무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사진 28> 소나무의 모습이 늠름하다.



       <사진 29> 새로 건축한 집에도 소나무를 키우고 있다.



       <사진 30> 이 나무는 상수리나무.



       <사진 31> 마을 어디서나 쉽게 큰 나무를 볼 수 있는 마을이다.



       <사진 32> 용틀임하듯 자라는 소나무도 있다. 자연이 만든 작품이렸다.



       <사진 33> 나무의 모양도 가지가지.



       <사진 34> 나무와 집과 거리의 어울림.



       <사진 35> 이 나무는 천재지변을 당한것 같다.



       <사진 36> 상수리나무.



       <사진 37> 이런 건물도 세워지고 있다.



       <사진 38> 잘 자란 뽕나무.



       <사진 39> 이름 있는 고택인것 같은데?



       <사진 40> 운치있게 가꾸어진 집들.



       <사진 41> 수정문.



       <사진 42> 이렇게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기는 한데?



       <사진 43> 담장 안에서도 치자나무는 자라고 있다.



       <사진 44> 찔레나무도 이렇게 가꾸면 바로 서는 나무가 될것 같다.



       <사진 45> 골목도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사진 46> 고택처럼 어울리고 있다.



       <사진 47> 책 발행을 기념하기 위해 심은 매화나무.



       <사진 48> 매화나무를 심고 표석을 세우다.



       <사진 49> 매원2리 경로당 모습.



       <사진 50> 매원2리 경로당 모습.



       <사진 51> 누운 나무는 누운대로 가꾼다.



       <사진 52> 애써 심고 가꾼 매화나무를 이렇게 손질하였으니.



       <사진 53> 경로당 앞에는 소나무, 팽나무, 느티나무가 장식을 하고 있다.



       <사진 54> 이 나무를 몰랐다. 언젠가 아파트에 심어둔 나무였는데 당시 명패는 '미국호두나무'라 하였다. 한 두 해가 지나도

             열매가 달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원인을 모르게 나무가 죽어버렸다. 그 나무가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영양소가 많은

             나무인 '피칸' 또는 '페칸'이란 나무일줄이야 어찌 알수 있을까?



       <사진 55> 피칸나무의 줄기 모습.



       <사진 56> 피칸나무의 열매가 아직 까지 달려있다.



       <사진 57> 피칸나무의 작년 열매.



       <사진 58> 땅에 떨어져 딩굴고 있는 피칸나무 열매인데 속 알맹이가 없다. 까닭을 모르겠다.



       <사진 59> 피칸나무의 잎은 어긋나고 깃꼴모양의 작은 잎들이 떨어져 쌓여있다.



       <사진 60> 잘 자란 구골나무인데 이런 나무들을 심은 까닭은 무엇인가?






   ※  감사합니다. 지금 까지 마을의 모습을 보이는대로 소개하였습니다. 어서 옛 모습을 찾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