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浦項) 기계면(杞溪面)에서 삼태사(三太師) 자취를 찾다.
1. 날 짜 : 2019년 8월 28일
2. 동 행 : 나미회 회원님들
3. 이야기
태사(太師) 3명을 배출한 고장이 있으니 오늘의 포항시 북구 기계면이다.
오늘은 삼태사(三太師)중에서 포항시 북구 미현리에 있는 태사 유삼재(兪三宰)의 묘소와 산 아래에 자리한 부운재(富雲齋- 포항시 북구
기계면 281)를 찾았다.
예부터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된 이 고장에서 지금 까지도 기계 삼태사라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윤태사(윤신달-
尹莘達), 유태사(유삼재-兪三宰), 신태사(신몽삼-辛夢森) 세 분을 말한다.
태사(太師)는 고려시대의 삼사(三師)의 하나로 정일품의 벼슬을 말하는데 유태사는 기계(杞溪) 유(兪)씨의 시조로 신라시대에 6두품이 오
를 수 있는 최고의 관등인 아찬 벼슬을 지냈다. 유태사인 유삼재의 묘소는 기계면 미현리에 있다.
신라가 쇠하고 그의 후손 유의신(兪義臣)이 고려에 불복하자 태조 왕건이 그를 기계 호장으로 삼았다. 이후 그 후손들은 기계를 본관으로
삼았다. 선조의 덕을 추모하고 후손의 번창함을 기원하는 기계 유씨의 부운재(富雲齋)가 있다.
삼태사에 대한 내용을 덧붙이면
기계면 봉계리 – 윤태사 윤신달(尹莘達) – 봉강재 - 파평 尹씨재실
기계면 미현리 – 유태사 유삼재(兪三宰) – 부운재 - 기계 兪씨재실
기계면 화봉리 – 신태사 신몽삼(辛夢森) – 화봉재 - 기계 辛씨재실
파평윤(尹)씨의 봉강재(鳳岡齋)는 2019년 1월 23일 살펴보았다. 그리고 기계유(兪)씨의 부운재(富雲齋)와 기계신(辛)씨의 화봉재를 오늘
살피기로 하였는데, 기계신(辛)씨의 화봉재는 문이 잠겨있어 내부를 살필수 없었다. 밖에서 신태사지석을 살피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사진 1> 기계유씨 시조 묘소 까지 가는 길을 다시 재정비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보이는 건물들이 부운재(富雲齋)인데 시조 묘소는 이 앞을
지나서 약 470m의 능선에 있다.
<사진 2> 기계유(兪)씨 시조인 태사 유삼재의 묘소 - 뒤에 있는 봉분은 누구인지 모른다고 한다 한다. 다만 앞의 봉분이 정혈자리라 한다.
<사진 3> 묘소에서 바라본 정면의 모습.
<사진 4> 묘소의 앞 모습 - '신라아찬유삼재묘'라 하였다. 아찬은 신라의 벼슬.
<사진 5> 내력을 적은 비석.
<사진 6> 뒤에서 본 묘소 앞의 모습 - 안산과 조산 그리고 좌청룡 우백호, 파호구가 분명하다.
<사진 7> 차풀이 꽃을 피우고 있다.
<사진 8> 뚝갈도 흰색꽃을 피웠다. 이 산에 고사리도 많아 보인다.
<사진 9> 일기문(一氣門) - '이 문을 통하는 사람은 모두 한 기운, 다시말해 한 집안이며 다 같은 핏줄의 兪씨다'
<사진 10> 부운재 현판 - 백세일실(百世一室) - '우리 기계유씨 일가는 백세(보통 한 세대를 30년 잡는다)가 지나도, 즉 천년만년 백대가
가도 한 집처럼 지내라' 라는 의미와 더불어 더 나아가 '아재, 조카등의 항렬이 확실하고 뿌리있는 집안'임을 강조한 것으로 이는
대종회 규약집에도 밝히고 있다고 한다.
옆의 현판은 화수헌(花樹軒)으로 문중의 중요한 일들을 의논하고 정하여 추진하는 곳이다..
<사진 11> 부운재 앞에서 자라고 있는 미국호랑가시나무 한 그루.
<사진 12> 맥문동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다.
<사진 13> 담 아래서는 배롱나무도 자라고.
<사진 14> 경내에서는 초피나무도 보인다.
<사진 15> 생열귀나무가 방문객을 환송해준다.
<사진 16> 신축한 교육문화회관 모습.
※ 감사합니다. 작성하면서 참고자료를 이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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