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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장성 필암서원(筆巖書院)을 찾다.

죽림, 대숲, 사라미 2020. 2. 7. 14:39



           장성 필암서원(筆巖書院)을 찾다.


   1. 날 짜 : 2020년 2월 5일

   2. 동 행 : 대경예임회 회원(제480회 모임)

   3. 이야기

         필암서원은 조선의 대학자인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선생의 학덕과 정신을 추모하기 위해 1590년 장성읍 기산리에

       창건된 서원이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졌으며, 1624년 황룡면 중산동 마을에 다시 건립했으나 지형이 낮아 피해가 커 1672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1662년 현종 임금 때 ‘필암(筆巖)’이라는 사액을 받았고, 평탄한 지형에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전형적인 서원 배치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서원이며,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및 사우 훼철령 때도 헐리지 않은 호남을 대표하는 서원이다.
       1786년 하서 선생의 제자이자 사위인 고암(鼓巖) 양자징(梁子徵) 선생을 종향(從享)하였다.      

       1975년부터 서원의 건물, 유품, 제향 등의 보존과 관리를 위해 건물과 부지는 국가사적 제242호, 서원의 노비보, 원장선생안, 서원 원적,

       봉심록 등의 문서는 보물 제587호로 관리되고 있으며, 1999년부터 하서 선생의 문집과 유목의 목판 700여 매는 지방유형문화재 제215호

       와 제216호로 관리되고 있다.

       2019년 7월 10일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14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9개 서원은 소수서원(1543년), 남계서원(1552년), 옥산서원(1573년), 도산서원(1574년),

       필암서원(1590년), 도동서원(1605년), 병산서원(1613년), 무성서원(1615년), 돈암서원(1634년)이다.


       <사진 1>  확연루(廓然樓) - 문루(門樓)를 겸한 서원의 정문으로 편액은 우암 송시열 선생의 글씨다.
                 정자의 가르침에 [군자는 확연이 틔임이있다]에서 따온 글이라 함.

                 홍살문(紅箭門) – 예의를 갖추고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하는 신성한 곳임을 알리기 위해 서원 입구에 세운 붉은색 문



       <사진 2>  필암서원을 안고 있는 나즈막한 산기슭의 나무들.



       <사진 3>  여름에는 숲이 우거져서 아름다운 배경이 되는 숲이다.



       <사진 4>  확연루 - 유생들의 휴식의 공간으로 이용되었다.



       <사진 5>  청절당(淸節堂) – 선비들이 공부하고 토론하던 강당으로 옛 진원현 객사를 옮겼으며, 편액은 동춘당 송준길 선생의 글씨다.



       <사진 6>  확연루를 들어서면 좌우에 백송을 한 그루 씩 심었다.



       <사진 7>  진입영역이다. 서원 안으로 들어가는 영역이다.



       <사진 8>  문화재자료 해설사님의 안내를 받아서 내용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되었다.



       <사진 9>  계생비(繫牲碑) – 서원에서 제사를 지낼 때 재물로 쓸 가축을 묶어놓고 검사하는 비석으로 묘정비도 겸하고 있다. 계생비가 서원

                   가운데 서 있다.



       <사진 10>  경장각(敬藏閣) – 힌종 임금이 하서 선생에게 하사한 묵죽도의 목판을 보관하던 건물이며, 편액은 정조 임금의 글씨로 보존을 위해

                   편액 위에 얇은 천으로 씌웠다.



       <사진 11>  경장각 편액 -정조 임금의 친필로 보호흫 위해 얇은 천을 씌워서 희미하게 보인다.



       <사진 12>  경장각 유물들.



       <사진 13>  경장각 보관 유물.



       <사진 14>  장판각(藏板閣) – 하서 선생의 문집을 비롯한 초천자문, 무이구곡, 백련초혜 등 목판 700여 매를 보관한 건물.



       <사진 15>  진덕재(進德齋) – 유생들이 공부하며 생활하던 동쪽의 건물로 편액은 송준길 선생의 글씨다.



       <사진 16>  숭의재(崇義齋) – 유생들이 공부하며 생활하던 서쪽의 건물로 편액은 송준길 선생의 글씨다.



       <사진 17>  우동사(祐東祠) – 하서 김인후 선생과 고암 양자징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편액은 주희의 글씨를 집자했다.



       <사진 18>  행단을 의식해서인가 원내에 은행나무 몇 그루가 있는데 모두 위를 잘랐다. 사진은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



       <사진 19>  유물전시관에 있는 하서 김인후 선생의 모습.



       <사진 20>  유물전시관 모습



       <사진 21>  서원 밖에 조성된 공원 모습.



       <사진 22>  공원 안에 있는 쉼터.



       <사진 23>  떠나면서 다시 본 필암서원 모습.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