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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경주 옥산서원(玉山書院)을 찾다.

죽림, 대숲, 사라미 2020. 1. 26. 15:57

 

           경주 옥산서원(玉山書院)을 찾다.

 

   1. 날 짜 : 2020년 1월 15일

   2. 동 행 : 대경예임회 회원

   3. 이야기

         오늘은 대경예임회 경주 남산 용장골 탐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옥산서원 문화탐방을 하기로 하였다.

       지금 까지 옥산서원을 여러번 찾기는 하였으나, 그 때마다 독락당에 있는 조각자나무를 살피느라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는데 오늘은

       옥산서원의 유물전시관을 살필 수 있었다. 청산 교장선생님의 노력과 옥산서원 원장님의 배려로 귀한 자료를 볼 수 있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 오늘은 독락당에는 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독락당의 조각자나무는 후일 다시 살피기로 하고. 

       경주 양동마을과 이 곳 옥산서원은 주변에 나무가 많아서 늘 푸근한 마음으로 탐방을 하곤 한다.

       오늘 살핀 내용은 앞 부분에 옥산서원의 주변 환경을 소개하고 이어서 청산 교장선생님의 자료를 소개하기로 한다.

 

       <자료 1>  옥산서원(玉山書院)에 대하여.
                 이 서원은 회재 이언적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세웠다. 이언적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으로 그의 성리학은 퇴계 이황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종묘에 명종의 공신으로 모셔져 있디. 그가 타계한 후 1572년에 경주부윤 이재민이 지방유림의 뜻에 따라 서원을 창건하

                 였으며 1574년에는 선조에게서 ‘옥산서원’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고종 5년에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에도 헐리지 않고 그대로 살아남은 47개의 서원과 사당 중 하나이다.

                 서원 건축의 역사로 보면 옥산서원은 초기의 건축물에 해당하는데, 당시에 지어진 서원들이 비교적 자유로운 구성을 따랐던데 비해

                 이 서원은 틀에 짠듯한 질서정연한 형식을 보이고 있다. 까다롭기로 유명했다던 이 서원의 원규만큼 이 건축물에서도 긴장과 절제

                 가 묻어난다.

                 정문인 역락문을 들어서면 누각인 무변루가 있고, 강당인 구인당의 양쪽으로는 동재와 서재가 있으며 강당 뒤쪽에 서 있는 것이

                 회재를 모신 사당인 채인묘이다. 동재의 오른쪽으로 지어진 여러 건물들은 서원의 살림을 맡았던 곳이다. 이 곳 고직사는 다른 서원

                 에 비해 유난히 규모가 커서 예전의 재산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고직사 뒤에 있는 문집판각은 목판을 보관하는 곳이다.

                 옥산서원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며, 그 현판 뒤에는 아계 이산해가 쓴 또 다른 현판도 걸려있다(안내문에서).

 

 

 

       <자료 2>  옥산서원 입구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 모습 - 열매 같은 것은 벌레집이다. 이 속에 애벌레가 들어 있겠지?

 

 

 

       <자료 3>  나무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자라고 있다.

 

 

 

 

       <자료 4>  오랜 역사를 이야기해 주고 있는 나무들.

 

 

 

 

       <자료 5>  나무가 이렇게도 자라고 있다. 속은 없어도 생장점만 있으면 이렇게 자란다.

 

 

 

 

       <자료 6>  亦樂門(역락문) - 옥산서원 외삼문으로 정문에 해당된다.

                  논어 '학이편'에서 유래된 이름 -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 벗이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오면 나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에서 유래된 말. 

 

 

                  역락문의 액찬(額贊 ) - 조선 전기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을 지낸 노수신(1515-1590) 선생의 글.

                                                <聞風則回望道而來  不亦樂哉邦之英才 (문풍칙회 망도이래 불역락재 방지영재)>

                                                 풍문을 듣고 돌아오며 도(道)를 바라서 찾아오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나라의 영재들이여.

 

 

                                        ※  옥산서원의 모든 액찬은 회재 선생의 제자 노수신 선생의 글로 알려져 있다.

 

       <자료 7>  향나무도 아주 잘 자라고 있다.

 

 

 

 

       <자료 8>  옥산서원 이영환 원장님의 해설을 들으며  - '玉山書院 ' 이 현판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씨.

 

 

 

 

 

                   ※  求仁堂(구인당)은 유생들의 강학공간 - 현판은 한석봉 선생의 글씨.

 

       <자료 9>  안쪽의 '玉山書院' 현판은 아계 이산해 선생 글씨.

 

 

 

 

       <자료 10>  無邊樓(무변루)는 유생들의 휴식공간.

 

 

 

 

       <자료 11>  洗心臺(세심대) - '마음을 씻고 자연을 벗삼아 학문을 구하라'는 뜻으로 자연석에 쓴 글씨는 퇴계 선생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은 옥산서원 유물관 소장 자료> - 청산 교장선생님 자료 - 설명은 략함.

 

 

 

 

 

 

 

 

 

 

 

 

 

 

 

 

 

 

 

 

 

 

 

 

 

 

 

 

 

 

 

 

 

 

 

 

 

 

 

 

 

    ※  감사합니다. 자료를 제공해 주신 옥산서원 이영환 원장님, 예임회 회장님, 청산 교장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