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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거창(居昌) 갈계리(葛溪里)를 가다(1)

죽림, 대숲, 사라미 2020. 6. 12. 16:10

           <거창(居昌) 갈계리(葛溪里)를 가다(1)>

 

1. 날 짜 : 2020년 6월 2일
2. 동 행 : 가족탐방
3. 이야기
  갈계리는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이 마을은 은진임씨(恩津林氏) 세거지(世居地)여서 응당 은진임씨 집성촌이기도 한 마을이다.

이 마을에 조선시대 유명한 문인(文人)이면서 효자였던 갈천(葛川) 임훈(林薰) 선생이 살았던 임씨고가(林氏古家)와 그의 동생 첨모당(瞻慕堂) 임운(林芸) 선생의 집 그리고 은진임씨 정려각(恩津林氏 旌閭閣)과 은진임씨 사료관(史料館) 등이 있어 역사적인 내력을 살필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문중의 뛰어난 사람들의 생뢀의 터전이었던 갈계숲도 있는 곳이다.

이 마을의 위치가 거창 수승대에서 가까운 거리여서 지역의 내력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응당 한 번 쯤은 들러서 돌아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나는 이지역에 대한 정보에 어두워 이 곳을 찾으려고 얌전히 두 바퀴를 돌아서 겨우 찾았다. 지난 번에 수승대를 돌아보고 간 일이 있어서 오늘의 시간 허비가 너무 아쉬웠다. 조금만 남을 위한 배려가 있었다면 수승대를 찾는 이들이 인근에 있는 이 곳을 찾을수 있도록 연계하여 안내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곳 뿐아니라 다른 방면에서도 일석이조(一石二鳥)가 되던가 아니면 ‘꿩 먹고 알 먹는’ 정도의 경졔적인 측면을 생각하였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오늘 본 내용을 마을의 졍경과 갈계숲으로 나누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사진 1>  마을에 은진임씨 세거지 표지석이 있어 세거지임을 알 수 있다.

 

 

<사진 2> 은진임씨들의 역사가 깃든 사료관.

 

 

<사진 3> 이 마을이 숲옛마을로 지름을 올렸다. 보기힘든 이름이다.

 

 

<자료 1> 거창 갈계리 임씨고가(居昌 葛溪里 林氏古家)
 경상남도 민속자료 제9호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에 있다.
 이 곳은 조선 중기의 문신(文臣)이자 효자로 이름이 높았던 갈천(葛川) 임훈(林薰, 1500-1584) 선생의 옛 집이다.

선생은 1555년(명종 10)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와 이 곳에서 80세가 넘은 아버지를 모시며 살았다. 이 집은 솟을삼문을 한 대문채, 사랑채, 안채가 각각 독립적인 ‘一’자형 건물을 이루어 전체적으로 ‘三’자형으로 배치되었다. 이러한 배치는 경남지방의 옛 주택에서 자주 나타나는 독특한 방식이다. 안채와 장판각(藏板閣), 사당(祠堂) 등의 건물은 최근에 신축되었다.

 이 집의 서쪽 담장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집은 선생의 동생인 임운(林芸, 1517-1572) 선생이 살던 집이다. 임운 선생 역시 효자로 이름 높았다. 임씨고가의 한 영역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 인조(仁祖, 1623-1649 재위) 때 지은 것이라 한다. 임훈 선생의 집은 홍살 정려문(旌閭門)과 그 문의 기둥을 떠받친 거북 모양의 주춧돌이 특이하다. 이 집은 조선 전기 경남지역의 주택 및 건축양식을 연구하는데 아주 귀중한 자료이다(안내문에서).

 

<사진 4> 갈계리 임씨고가 알림판인데 서간소루 집 앞에 서있다.

 

 

<사진 5> 임씨고가 앞의 정경이다. 요즘이 농사철이라 트럭이 서 있다.

 

 

<사진 6> 집 앞에 서 있는 비석 - 정심수진(正心修身)이란 글귀가 마음에 와 닿는다.

 

 

<사진 7> 솟을대문 모습이다. 정려가 대문과 함께 설치되어 있다.

 

 

<사진 8> 홍살문의 주춧돌이 거북등에 서 있다.

 

 

<사진 9> 왼쪽 홍살문 기둥의 주춧돌 모양.

 

 

<사진 10> 정려된 모습.

 

 

<사진 11> 솟을 대문채를 지나면 사랑채가 나타난다.

 

 

<사진 12> 사랑채의 편액 - '자이당'은 임훈 생의 호.

 

 

<사진 13> 사랑채 옆면의 구성.

 

 

<사진 14> 사랑채 한 쪽에는 쉴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사진 15> 안채와 장판각 모습이다. 안채를 다시 수리를 한 것 같다. 아직 정리는 하는 중.

 

 

<자료 2> 장판각(藏板閣)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68호로 지정되었으며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에 있다.

이 곳에는 갈천(葛川) 임훈(林薰, 1500-1584) 선생과 첨모당(瞻慕堂) 임운(林芸, 1517-1572) 선생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만든 책판 177매가 보관되어 있다. 두 문집은 1665년(현종 6)에 선생의 후손이 편집하여 간행하였으며, 송시열(宋時烈) 선생이 서문을 썼다.

4권 2책으로 구성된 「갈천집」에는 선생이 쓴 시를 비롯하여 상소문과 잡문 등 다양한 글이 실려있다 그 중에서 “언양진폐소(彦陽陳弊疏)”는 선생이 언양현감으로 있을 때 고을의 어려운 실정을 조정에 보고하고 해결을 촉구한 글로 가혹한 세금 때문에 고통 받는 농민의 생활상을 호소하고 있어 당시 언양 지역의 사회 실정을 생생히 전해주고 있다.

3권 2책으로 구성된 「첨모당문집」 역시 시와 문장 등 다양한 글이 실려 있으며, 특히 유학을 장려하고 불교를 배척하는 글을 실어 조선시대의 사상적 경향을 잘 전해주고 있다. 두 문집에는 또한 지역사회에 관한 글들이 다수 실려 있어 거창 지역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안내문에서).

 

<사진 16> 장판각 모습.

 

 

<사진 18> 경판 보관 모습.

 

 

<사진 19> 사당 들어가는 문.

 

 

<사진 20> 사당 전경.

 

 

<사진 21> 사당에 모셔진 임훈 선생 영정.

 

 

<자료 3> 서간소루(西澗小樓)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52호로 지정되었으며 있는 곳은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임훈 선생이 살던 집 옆에 있다.
이 건물은 첨모당(瞻慕堂) 임운(林芸) 선생의 세가(世家)로 그 아들인 서간(西澗) 임승신(林承信) 선생이 강학(講學) 하였던 곳이다. 서간공(西澗公)은 덕행(德行과 학문이 높아 동계(桐溪) 정온(鄭蘊) 선생이 지기(知己)의 선배로 모셨으며, 본루(本樓)의 기문(記文)도 동계 선생이 찬(撰)했다. 은진임씨(恩津林氏)의 종택(宗宅) 서편에 위치하고 있는데, 솟을대문에는 첨모당(瞻慕堂) 선생의 홍문(紅門)이 있고, 사랑채가 남아있는데 본채는 6.25전쟁 때에 소실되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이전의 건물이다 보니 기둥이 부식(腐蝕)되어 두 차례나 보수한 바 있는 유서 깊은 건물이다. 1997년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52호로 등록되었다(안내문에서).

 

<사진 22> 첨모당 임운 선생의 세가.

 

 

<사진 23> 솟을대문과 겸한 홍문 모습.

 

 

<사진 24> 서간소루 편액.

 

 

<사진 25> 첨모당 세가 편액.

 

 

<사진 26> 서간소루의 홍살문 모습.

 

<자료 4> 은진임씨 정려각(恩津林氏 旌閭閣)
  경상남도 거창군 복상면 갈계리에 있으며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34호로 지정되었다.

은진임씨 집성촌인 북상면 갈계리 도로변에 위치한 정려각은 조선 명종 계해년(1563)에 갈천(葛川) 임훈(林薰) 선생과 첨모당(瞻慕堂) 임운(林芸) 선생 형제의 효행을 널리 알리고자 생전에 내려진 생정려(生旌閭) 2위(位)를 비롯하여 순조 임진년(1832)에 정려된 임한신 선생과 선생의 처 고령박씨, 고종 28년(1891)에 정려된 임경원 선생, 광무 9년(1905)에 정려된 임지예(林之藝) 선생을 추가하여 추가하여 모두 6위를 모시는 곳이다. 이 정려각의 초창은 1564년 현감 이효언의 주도로 이루어졌고, 동계(桐溪) 정온(鄭蘊, 1569-1641) 선생의 중수기에 1600년에 중수가 있었다고 하며 현존 건물은 1905-1910년 경에 지어진 것이다.

정려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집으로 초석은 통돌을 깎아 아래는 4각형으로, 위는 6각형으로 만들었다. 벽채는 배면만 판벽으로 막고 정면과 측면은 살창을 끼워 환기가 잘 되도록 하였으며 특히 정면의 중방 아래는 교살을 넣어 장식성을 높였다. 기둥은 직경 29cm의 큰 원기둥을 사용하였으며, 포는 기둥 사이에도 포를 올린 다포양식이며 가구는 3량 구조 형식으로 대들보 위에 사각형의 판재에 꽃병에 꽂힌 꽃 모양을 조각한 판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게 한 형식이다.

이 정려각은 효행을 상징하는 정려 비석 뿐만아니라 건축물의 규모와 양식적 완성도가 뛰어나 2009년 2월 19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안내문에서).

 

<사진 27> 은진임씨 정려각

 

 

<사진 28> 은진임씨 정려각.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