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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씩실마을 양촌고택(陽村古宅)을 보다.

죽림, 대숲, 사라미 2020. 7. 8. 06:27

 

            씩실마을 양촌고택(陽村古宅)을 보다.

 

 

1. 날 짜 : 2020년 7월 6일

2. 동 행 : 가족탐방

 

3. 이야기

 

  씩실마을의 양촌고택을 찾았다.

꼭 이 곳을 목표로하여 간 것은 아니다. 이 마을에 가깝고도 먼 일가가 있어 안부를 겸한 방문에서 이 마을을 살피게 되었다.

 도로표지판의 안내에도 마을 안의 안내에도 '씩실마을'이라 하였으니 필연 내력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도 작용하였다.

마을 이름이던 물건 이름이던 이름 자체가 호감을 갖기에 충분한 상태다. '씩실마을'이란 자체가? 그러니 더욱 호감이 가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

 

<씩실마을(삼리-三狸 1리)에 대하여>

  국도로 대구에서 고령쪽으로 가다보면 고령과 현풍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인 위천 삼거리가 나온다. 위천 삼거리 못가서 논공읍소재지인 금포를 지나 1km 정도의 지점에 고속도로가 지나는 고가도로가 있고 그 아래에 위치한 오른쪽 마을이 '씩실마을'이고 왼쪽에 있는 마을이 '안씩실마을' 이다.

지명표지판에도 씩실마을, 안씩실마을이라 하였는데 이 일대 모두를 묶어 행정명칭인 ’삼리리(三狸里)라 부른다.

삼리(三狸)는 세 마리 살쾡이(삵)이라는 뜻 - 삼리리(三狸里)는 외리(外狸), 중리(中狸), 내리(內狸)를 말한다. 곧 이 부근의 전통마을인 씩실, 바깥씩실, 안갱이, 안씩실 등 여러 전통마을을 묶어서 부르는 오늘날의 행정명칭이다.

 동명에 살쾡이(삵)를 의미하는 ‘리(狸)’자가 사용된 것은 이 지역 산의 모습이 마치 살쾡이 모습을 닮아 붙여진 것이라 한다. 이 ’삵‘이 변해서 ’씩‘으로 되어 지금의 ’씩실(狸谷)‘이 된 것이라한다. ’실‘은 곡(谷 - 마을, 동네)과 같은 뜻으로 순수한 우리 말이다. 이 마을에 게시된 마을 안내판이다.

 

<사진 1>  마을 가운데에 게시된 마을 안내판이다.

 

 

<사진 2>  마을회관 모습이다. 그런데 이름을 삼리1리(승호 - 承湖)회관이라 하였다.

  '씩실'은 예전에는 ’승호(承湖)라고도 불렀다. 예전에 마을과 낙동강 사이에 큰 호수가 있었다. 그래서 이름도 '호수호(湖)자'를 써서 ‘승호’라고 했다고 한다. 이 곳 씩실 북쪽에는 지금도 큰 씩실늪이 있다.

 

 

 

<사진 3>  양촌고택 들어가는 입구다. 마치 성을 쌓아놓은 것 같이 답답한 느낌을 준다. 왜 이렇게 막아놓았는지 알 수 없다.

 

 

<사진 4>  양촌고택 모습이다. 앞뜰에 잘 자란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다. 고택은 그렇게 화려하지도 않고 평범하면서도 격식을 잃지않는 생활 모습을 연상하게 하였다.

 

  양촌고택(陽村古宅)은 씩실마을의 입향조(入鄕祖)인 양촌 이난미(陽村 李蘭美, 1592-1661) 선생이 살던 집으로 1610년경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산이씨 씩실 입향조인 이난미 선생은 자가 ‘유형’ 호는 '양촌(陽村)'이며 이홍량의 아들이다. 일찌기 고모부인 정 구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형인 이난귀와 함께 학문과 효도 및 우애로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다. 세상 사람들은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요, 형이 더 나은지 동생이 더 나은지 구분하기 힘든다고 칭찬하였다 한다. 고택 앞에는 오래된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으며 지형 보다 높게 터를 돋우어서 지었다

 

 

 

<사진 5>  '양촌고택'을 알리는 현판이 보인다.

 

 

<사진 6>  집 앞에서 잘 자란 회화나무의 모습.

 

 

<사진 7> ' 양촌고택'에 대한 내력을 적은 편액이 게시되어 있다.

 

 

<사진 8>  좁은 고택 출입문을 들어서면 내부 모습은 이러하다.

 

 

<사진 9>  참마가 자라고 있다.

 

 

<사진 10>  솟을대문이 있는 만월당인데 이 집의 내력을 알 수가 없다.

 

 

<사진 11>  개량 꾸지뽕나무다. 열매가 많이 달렸다.

 

 

<사진 12>  갯기름나물도 자라고 있다.

 

 

<사진 13>  마을 뒷산의 일부분 모습.

 

 

<사진 14>  마을이 오늘날의 모습으로 발전하고 있다.

 

 

<사진 15>  골담초가 제법 잘 자랐는데 베고 다듬기를 계속하다보니 모양이 이렇게 되었다.

 

 

<사진 16>  정명은 박주가리과에 속하는 큰조롱이다. 한방에서는 백하수오로 통하는 풀이다. 밭에 심어놓은 모습이다.

 

 

 

 

 

 

참고 : cafe.daum.net/3169179/Dbvp/15?q=%EB%85%BC%EA%B3%B5%EC%9D%8D%20%EC%96%91%EC%B4%8C%EA%B3%A0%ED%83%9D

 

 

 

 

 

※  감사합니다. 그런데 지역의 명문가인 양촌고택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아서 이해가기가 어려웠습니다. 가까이에 이렇게 좋은 역사적인 자료가 있지만 후세의 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송선비님의 글을 발견하여 많은 도움을 받고 새로운 내용도 익혔습니다. 이 난을 빌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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