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문은 넓게

134. 남평문씨본리세거지(南平文氏本里世居地)에서.

죽림, 대숲, 사라미 2020. 6. 27. 10:38

                    "얻었다한들 본래 있던것

                        잃었다한들 본래 없던것"

 

  대구광역시 민속문화재 제3호
  면적 : 1만 1701㎡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401-2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에 있는 조선후기 남평문씨의 동족마을. 세거지.

 

1. 찾은 날 : 2020년 6월 00일
2. 동 행 : 자유탐방
3. 이야기
  이곳은 고려말의 충신이며 원나라로부터 목화씨를 가져와 우리나라 의복문화에 혁신을 가져온 문익점 선생의 18세손인 문경호 선생이 1840년을 전후하여 이 곳에 터를 잡아 남평문씨 일족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원래 인흥사의 절터였던 곳을 구획하여 집터와 도로를 반듯하게 정리하고 집을 지었다.

현재 아홉 가구의 살림집과 수봉정사, 광거당, 인수문고 등이 한 울타리 속에 정연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풍치 있는 토담으로 둘러싸인 부지 안에 총 70여 채의 전통기와집들이 들어서 있다.

수봉정사는 세거지의 입구에 있는 정자로 정원을 매우 아름답게 꾸민 곳이다. 주로 손님을 맞고 일족의 모임을 열 때 사용하던 큰 규모의 건물이다.

광거당은 문중의 자제들이 학문과 교양을 쌓던 수양장소이다.

또 인수문고는 문중의 서고로, 규장각 도서를 포함한 책 1만여 권을 소장하고 있다. 처음에는 작은 규모였으나 후에 크게 늘려지었고, 도서열람을 위한 건물도 따로 지어놓았다(자료에서)

오늘은 달성군 본리리에 있는 남평문씨세거지에 서 있다. 이 곳은 여러번 찾았던 곳이지만, 신록을 맞은 인흥원을 중심으로 여러 모습들을 살피고자 다시 찾았다. 대부분의 집들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어 탐방을 한다해도 최소한의 배려는 있어야 하고, 주민들의 피해가 없도록 유의해야할 일이다.

남평문씨 세거지의 오늘은 역사 만큼이나 능소화가 아름답게 피어 방문객을 맞고 있었다. 날씨 화창한 오늘 능소화 아래서는 장래를 약속하는 오월의 신부가 야외촬영을 하고 있다. 오월 만큼이나 싱그럽고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 마냥 자랑스럽게 보였다.

능소화는 온 마을에 골고루 퍼져 피고 지고를 반복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올린 능소화는 나름대로 이름을 붙인 <꽃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는 집> 담장에서 자라는 능소화라서 더욱 감회가 깊었다. <꽃을 사랑하는 사람의 집> 정원에는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야생화들이 많다. 한 때 그 꽃들을 알기 위해서 자주 들렀던 집인데 요즘은 찾아뵙지를 못했다. 주인이 거주하는 살림집인데 지킬 것은 지켜야 하기에 그러다보니 시간만 흘러가곤 해서다. 인흥원의 연못 또한 신록의 계절을 맞아 더욱 싱그럽게 치장을 하고있다. 연못에는 연꽃이 활짝피었다. 아주 아름답게 피어서 그렇지 않아도 아름다움이 가득한 세거지를 더 아름답게 꾸며주고 있다.

문익점 선생의 후손인 문경호 선생이 이 곳에 터를 잡아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이에 맞게 문익점 선생의 후손들 답게 이 터전을 더욱 발전시키고 있어 마음 흐뭇한 곳이기도 하다. 몇 년 전부터 목화도 심고 가꾸고 있고 근래에는 문익점 선생의 동상도 세워 명실공히 이룬 업적을 더욱 발전시키고 있다.

문익점 전생의 동상이 우뚝 서 있고 선생의 업적을 남겨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나 앞으로 살아갈 후손들에게 큰 학습의 장이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오늘 본 내용을 소기하기로 한다.

 

<사진 1>  참 좋은 말이라 옮겨보았다. 문희갑 전 대구시장님의 집 문에 붙인 글귀다. 다시 그 뜻을 음미해보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한 마디로 생각된다.

 

 

<사진 2> 세거지를 보호하기 위해 심은 비보림의 나무들이다. 현재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사진 3> 인흥원 이용 안내문이 여러군데 게시되어 있다.

 

 

<사진 4>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능소화 신부님 축복 있으리.

 

 

<사진 5> 전국으로 알려진 본리리 남평문씨세거지의 능소화.

 

 

<사진 6> 꽃을 사랑하는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의 망종화도 활짝.

 

 

<사진 7> 주변이 모두 잘 어울린다. 고풍스러우면서도 현실 감각이 살아있는 곳.

 

 

<사진 8> 인흥원 연못의 연꽃도 아름다움을 열다.

 

 

<사진 9> 연꽃이 활짝.

 

 

<사진 10> 연꽃이 활짝.

 

 

<사진 11> 연꽃이 활짝.

 

 

<사진 12> 연꽃이 활짝.

 

 

<사진 13> 연밥도 아름답다.

 

 

<사진 14> 연꽃이 활짝.

 

 

<사진 15> 생열귀나무가 있길래 한 컷.

 

 

<사진 16> 이용 안내문.

 

 

<사진 17> 연꽃이 활짝.

 

 

<사진 18> 연꽃이 활짝.

 

 

<사진 19> 연꽃이 활짝.

 

 

<사진 20> 연꽃의 아름다움.

 

 

<사진 21> 연꽃의 아름다움.

 

 

<사진 22> 연꽃의 아름다움.

 

 

<사진 23> 연꽃의 아름다움.

 

 

<사진 24> 연꽃의 아름다움.

 

 

<사진 25> 연꽃의 아름다움.

 

 

<사진 26> 연꽃의 아름다움.

 

 

<사진 27> 연꽃의 아름다움.

 

 

<사진 28> 문익점 선생 동상과 목화밭.

 

 

<사진 29> 조선 21대 영조 임금의 전교.

 

 

<사진 30-34> 삼우당 문익점 선생 행적비.

 

(우리나라 말)
(영어로 설명)
(일본어로 설명)
(중국어로 설명)
(전체적인 배치 모습)

 

<사진 35> 목화밭과 세거지 모습.

 

 

<사진 36> 인흥사지 안내문 - 이 곳에 인흥사란 절이 있었다고 한다.

 

 

<사진 37> 인흥사지 안내문.

 

 

<사진 38> 문익점 선생과 관계된 조형물 - 붓과 목화씨를 주제로 하였다.

 

 

<사진 39> 다목적용 장소로 보인다.

 

 

<사진 40> 문익점 선생에 대하여.

 

 

<사진 41> 다목적 광장의 모습

 

 

<사진 42> 수봉정사 앞이다. 이 곳이 이렇게 조용할 때가 없는데 코로나-19 관계로 당분간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사진 43> 신종코로나 확산으로.

 

 

<사진 44> 문경호 선생나무 옆에서 자라고 있는 주엽나무.

 

 

<사진 45> 문희갑 전 대구시장님 댁 대문에는 '얻었다한들 본래 있던것'

                                                            '잃었다한들 본래 없던것'

 

 

<사진 46> 보호수 '문경호나무' - 회화나무.

 

 

<사진 47> 마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능소화덩굴.

 

 

<사진 48>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보호수들.

 

 

<사진 49> 도깨비가지가 잘 자라고 있다. 외래종이라 생장력이 엄청 강하다 - 연보라색꽃이 피는 종.

 

 

<사진 50> 도깨비가지 - 흰색꽃이 피는 종.

 

 

 

   ※  감사합니다.

 

 

참고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24,00030000,22&pageNo=1_1_1_1#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