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문은 넓게

161. 애국지사 석천 백남채(石泉 白南埰)선생 묘역에서.

죽림, 대숲, 사라미 2021. 12. 24. 08:47

 

              애국지사 석천 백남채(石泉 白南埰)선생 묘역에서.

 

1. 날짜 : 2021년 12월 21일

2. 동행 : 자유탐방

 

3. 이야기

  이젠 이름이 금봉산으로 되었으니 금봉산 자락 가족묘지에 잠드신 애국지사 백남채 선생의 묘를 보았다. 지금 까지 이 산을 자주 다녔지만 이 길은 오늘 처음 걸었다.
내일이 동지라서 금봉숲길을 걷다가 곁길인 대구문화예술회관 옆으로 내려오는 길을 걷게 되었다.

해마다 동지에 두류산 금용사에 가는데 올해는 피치못할 사정이 있어 오늘 앞당겨서 가려고 곁길을 걸었다. 그런데 오늘 따라 더 뚜렷하게 보이는 비석을 보게되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비석에 ‘애국지사 석천 백남채 장로묘(愛國志士 石泉 白南埰 長老墓)’ 였다.

얼마전 동구 신암동에 있는 국립신암선열공원에 갔다 왔는데 애국지사라면 응당 이 곳에 있어야 하는데 왜 잡초가 우거진 이 곳에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겼고 정말 애국지사님이라면 오늘을 사는 사람으로서는 마땅한 예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참고자료를 살피게 되었다.

그런데 나와 똑 같은 생각을 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았고 지금은 대전 현충원으로 옮겼고 가족은 서울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안다는 댓글도 보았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묘역이 나무와 찹초로 덮혔고 묘비도 그대로 있으며 이 곳이 가족묘역이라 백지사님의 가족분들도 이 곳에 묻혀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어쩐지 뒤처리가 깨끗하지 않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여기에 올려본다.
정녕 다른 곳으로 옮겼다면 하필이면 왜 대전인가 하는 아쉬운 생각도 든다. 백지사님의 주활동 무대가 대구였고 또 대구에서 독립운동을 하였으니 이 곳에 모시는 것이 더 뜻이 있지 않을까하여 아쉬운 마음에서 올려본다.

 

  애국지사 석천 백남채(1888. 1. 1-1951.10.2.) 선생은 구한말(舊韓末) 경상북도 경산군 용성면 송림동에서 수원백씨(水原白氏) 중시조 창직(昌稷)공(公)의 27세손인 용규(龍達)공과 자당(慈堂) 안순이(安順伊) 여사 사이의 4형제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지사의 자(字)는 성숙(聖淑), 호(號)는 석천(石泉)이다.
가족묘역의 위치는 대구광역시 달서구 두류3동 산326-13 이다.

 

<사진 1>  비석의 앞면.

 

<사진 2> 비석의 앞면.

 

 

 

<사진 3> 비석의 옆면.

 

 

<사진 4> 비석의 뒷면.

 

 

<사진 5> 비석의 옆면.

 

 

<사진 6> 상석 모습.

 

 

 

 

 

 

 

 

 

 

참고
https://cafe.daum.net/indepedent/44ck/238?q=%EB%8F%85%EB%A6%BD%EC%A7%80%EC%82%AC+%EB%B0%B1%EB%82%A8%EC%B1%84&re=1 광복회 대구광역시지부.

 

 

 

 

※  감사합니다. 현재의 모습을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