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男兒二七成何事 - 의병장 신돌석(申乭石)을 보다. >
1. 날짜 : 2022년 1월 14일
2. 동행 : 가족탐방
3. 이야기
어릴 때 전설처럼 들렸던 의병장 신돌석에 대한 이야기를 실제로 본 날이다.
그 동안 오가는 길목에 있는데 일찍 찾아보았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으니 너무 무관심 했다는 자책감마저 든다.
신돌석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어릴적 그러니까 초등학교에 다니지 않았을 때 어머니로부터 옛날 이야기처럼 한 두 번 해주신 것이 전부인데 나로서는 그냥 먼 옛날 전설 같은 이야기로 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산을 훌쩍 넘어가고 바위도 들어서 이 산 저산에 던지고 받고, 하룻 저녁에 천리를 오간다 했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영해시장 만세운동 홍보물을 보고 혹시나하여 잘펴본 결과 신돌석이 전설이 아닌 실존인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늦었지만 늦은 것이 빠른것이라는 말을 믿고 오늘 고향을 가면서 들렀다.
신돌석(申乭石, 1878~1908) 의병장은
본관은 평산(平山), 자(字)는 순경(蕣卿)이고, 호(號)는 장산(壯山) 본명은 태호(泰鎬)이다.
이명(異名)은 돌석(乭石), 태홍(泰洪), 태을(泰乙), 대호(大浩)이며, 태백산호랑이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던 인물이다.
1878년 11월 3일 경북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복디미)에서 아버지 신석주(申錫柱)와 어머니 분성(盆城)김씨 사이에 2남 2녀중 셋째이자 맏아들로 태어났다.
신돌석 장군의 생가는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신돌석장군 1길 27-3(지번은 도곡리 528)에 있으며 7번 국도를 달려 영해 못미처 도곡리로 갈리는 곳에 생가와 유적지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위치하고 있다.
신돌석 장군은 을사조약 다음해인 1906년에 의병을 일으켜 영해, 영덕, 평해에서부터 삼척, 양양, 강릉, 원주, 안동, 영양 등 경북 북동부와 강원도 일대까지 신출귀몰하며 왜군에 저항했던 의병장입니다.
조선 말기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구하려고 일어선 의병장들은 많지만 신돌석 장군처럼 약관의 나이에 그것도 평민으로서 의병대장이 되어 활약한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나라를 위하는 일에 반상과 남녀노소가 어디 있으리오마는 당시에는 평민으로서 의병을 일으켜 항일운동을 했다는 사실 하나로도 얼마나 자랑스런 일인가?
고향인 평해에서도 항일운동을 하였다는데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평해 월송정에 올라 나라를 걱정하고 근심하는 시를 남겼는데 시에 깃든 장군의 우국총정(憂國衷情)과 앞날의 포부는 신돌석 장군만이 가질수 있는 정말 자랑스런 일이라 크게 외쳐본다. 지금 까지 나라의 큰 재난에는 반드시 원인을 제공하는 소인배들이 있어왔다. 코앞의 이익만 취하려는 인간들에 비하면 비록 평민의 신분을 뛰어넘어 구국(救國) 운동에 앞장선 선구자요 애국지사인 의병장 신돌석 !
그 이름 영원히 빛나길 바라면서 오늘 본 생가와 유적지를 올려본다.
<사진 1> 이 집은 신돌석 장군 생가다. '태백산 호랑이'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큰 활약을 벌인 장군의 구국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5년에 복원되었다.
<사진 2> 신돌석 장군 생가 옆에 있는 집으로 오늘 지붕을 잇고 있길래 올려보았다.
<사진 3> 담이 있는 생가와 옆에 있는 초가집.
<사진 4> 신돌석 장군 생가 마당에 있는 유허석.
<사진 5> 다른 쪽에서 본 생가 모습.
<사진 6> 항일운동 당시의 태극기도 게시되어 있다.
<사진 7> 생가의 뒤 모습.
<사진 8> 신돌석 장군의 힘에 관련된 이야기.
<사진 9> 신돌석 장군의 힘과 관련된 실증 실물들 - 전신주, 디딜방아, 절구통, 돌다리자료 등.
<사진 10> 신돌석 장군 생가를 다시 보고 그 곳을 나섰다.
<사진 11> 신돌석 장군의 유적지를 찾았다.
신돌석 장군에 대한 각종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수집, 보전, 전시하여 장군의 넋을 기리고 항일정신을 되새겨보는 역사교육의 전당으로, 1999년 11월 18일
개관하였다. 이 유적지에는 충의사(사당), 동재, 서재, 외삼문, 내삼문, 기념관, 관리사무소, 주차장, 화장실 등의 주요시설이 있다.
<사진 12> 신돌석 장군에 대한 안내.
<사진 13> 영릉의진에 대하여.
<사진 14> 의병장 신돌석 장군에 대한 안내.
<사진 15> 신돌석 장군이 1904년 월송정에 올라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걱정하며 읊은 시.
<사진 16> 나라를 걱정하며 읊은 시비.
<사진 17> 의병활동을 알기쉽게 소개한 공간.
<사진 18> 산딸나무가 심어져 있길래.
<사진 19> 충의사 들어가는 외삼문.
<사진 20> 동재 모습.
<사진 21> 서재 모습.
<사진 22> 내삼문을 들어서면 충의사(忠義祠).
<사진 23> 충의사.
<사진 24> 충의사(사당)에는 영정과 위패를 모신다.
<사진 25> 같이 의병활동을 한 동지들의 위패도 모셔져 있다.
<사진 26> 이 나무가 이 지역에 자생하는 나무였으면 하는 바램에서 올렸다.
<사진 27> 충의사를 나오면서 다시 돌아본 모습.
<사진 28> 신돌석 장군 기념비.
순국의사 신돌석장군 기념비는 경상북도 독립유공자선열유족회에서 1965년 7월에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우곡리(호호대솔동산)에 건립한 것을
이 곳 유적지 성역화 지역으로 1999년 11월 18일에 이건하였다.
<사진 29> 신돌석 장군 유허비.
의병대장신공유허비는 장군의 동생 신태범이 각처에서 모금하여 1948년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 528(복두산 기슭)에 건립한 것을
이 곳 유적지 성역으로 1999년 11월 18일에 어건하였다.
<사진 30> 기념관 입구 중앙에 자리한 의병장 신돌석 장군 흉상.
<사진 31> 신돌석 장군에 대한 안내.
<사진 32> 신돌석 장군의 항일운동 격전지.
<사진 33> 의병 활동에 이용되었던 무기들.
<사진 34> 의병들의 울진 우편취습소 공격 모습.
<사진 35> 의병 활동 자료.
<사진 36> 신돌석 장군 유적지와 연표.
<사진 37> 주차장에서 본 신돌석 장군 유적지 모습.
※ 감사합니다. 안내자료를 이용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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