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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울진 대풍헌(待風軒)을 보다.

죽림, 대숲, 사라미 2022. 10. 23. 21:03

 

 

          울진 대풍헌(待風軒)을 보다.

 

 

1. 날짜 : 2022년 8월 9일
2. 동행 : 가족탐방


3. 이야기
  ’대풍헌(待風軒)‘이란 바람을 기다리는 집을 말한다.

조선시대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기 위하여 수토사(搜討使 - 울릉도에 몰래 들어간 주민들을 육지로 데리고 나오거나 몰래 울릉도나 독도에 들어온 일본인을 수색하여 토벌하는 군사)를 파견하였는데 바다의 기상을 보아 순풍이 불어 배가 출항하기 좋은 때를 기다리는 장소가 대풍헌이다.


울진 대풍헌이라 하였지만 실제 대풍헌이 있는 곳은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구산봉산로 105-2(구산리 202번지)로 
  경상북도 기념물 제 165호로 지정되어 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이런 역사적인 건물이 구산리에 있는 것도 몰랐다.

구산동사(龜山洞舍) 중수기에 조선조 철종 2년(1851)에 대풍헌을 고쳐 지으면서 ’구산동사‘와 ’대풍헌‘이라는 현판을 걸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며, 이후 1906년에 다시 한 차례 고쳐지었으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건물이 허물고 변형되어 이것을 막고자 2010년 건물을 해체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지금도 기회만 있으면 일본은 독도를 지기들의 영토라고 우기고 있는 이 때 우리 영토를 지키는데 수토사의 활동이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명확히하는 자료가 되고 있다. 역사란 이런 것이다. 역사는 바르고 정확하게 기록되어야 하고 이런 역사가 있는한 억지주장은 성립되지 않음을 수토사들의 활동과 대풍헌의 실물로 증명이 된다.  

수토사들이 순픙이 불 때 까지 기다리는 대풍헌이 있고 수토사들이 타고 토벌한 수토선 모형 그리고 독도의 모형을 제시함으로써 후세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길러주는 산 역사의 현장으로 이용하고자 현 구산리 마을

가운데에 전시되어 있다. 


이런 자료가 만들어진 것은 최근의 몇 년간이다. 그 이전에도 나는 바닷가의 생태를 살피고자 이 곳을 자주 탐방하였다. 이 곳에는 해안의 환경에서 잘 자라는 풀과 나무들이 많았고 특히 한방약재로 많이 사용되는 갯방풍이 이 곳에서 자생하고 있기에 오늘도 이들을 확인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갯방풍은 불수가 없었다. 내년 봄에는 볼 수 있을런지 기다려야 한다는 하루가 되었다. 
오늘 뜻깊게 본 식물은 화려하게 꽃을 달고 있는 순비기나무와 곰솔, 그리고 갯메꽃과 바닷가에서 자라는 갯사초들도 함께 살폈다. 
오늘 본 현장교육자료와 나무 및 풀들을 올려본다.  

 

 

   <울진 대풍헌(待風軒)에 대한 안내.>


  울진 대풍헌은 동해안 해변의 작은 포구 구산리(龜山里) 마을 중심부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건물은 원래 동사(洞舍)였으나, 18세기 말부터 구산항에서 울릉도로 가는 수토사(搜討使)들이 순픙(順風)을 기다리며 머물렀던 장소가 되었다. 이 건물은 정면 4칸, 좌측면 4칸, 우측면 3칸의 일(一)자형 팔작집으로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수없으나, 1851년 조선 철종 2년 중수하고 ‘대풍헌(待風軒)이란 현판을 달았다. 이후 몇 차례 보수과정을 거쳐 여러 부분이 변형되어 2010년 해체·복원 하였다. 또한 대풍헌 소장 문서는 삼척 진장과 월송 만호가 2-3년에 한 번씩 울릉도를 수토할 때 평해 구산항에서 출발한다는 것과 수토사 일행의 접대를 위해 소요되는 각종 경비를 전담했던 구산동민들의 요청에 따라 부담을 경감할 수 있는 방책에 대해 평해군에서 결정해준 내용의 「완문(完文)」과 「수토절목(搜討節目)」이다. 그 동안 문헌 사료에 19세기 들어서면서 울릉도에 수토사를 파견했다는 기록이 거의 보이지 않았으나, 이 문서와 대풍현에 의해 여전히 조선이 울릉도(독도)를 우리의 영토로 인식하였으며, 정기적으로 순찰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대풍헌은 조선시대 울릉도를 순할하던 수토사들이 머문 장소로 그 역사적 의미가 크다(안내문)

 

 

<사진 1>  대풍헌 가는 길.

 

<사진 2>  저 안쪽에 보이는 건물이 대풍헌.

 

<사진 3>  이 건물은 수토문화전시관으로 대풍헌 앞에 자리하고 있다.

 

<사진 4>  대풍헌 모습 - 현판이 둘이다.

 

<사진 5>  대풍헌 현판 - 왼쪽 현판은 '기성구산동사'  오른쪽 현판은 '대풍헌'

 

 

   <수토사 자료>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후기 들어서 약 200년간(1694-1894) 삼척포영과 월송포진의 수군으로 꾸려진 수토사(수토관을 포함한 일행)를 주기적으로 번갈아가며 파견하여 울릉도(독도)를 관리하였다. 
수토사는 수토선을 타고 울릉도(독도) 까지 항해하였으며, 출항하기전 순풍을 기다리며 구산항 대풍헌(待風軒)에서 머물기도 하였다. 
여기의 수토선 조형픔은 길이 12m, 너비 3m, 높이 2.3m 크기의 모형으로 조선시대 판옥선을 기준으로 추정하여 재현한 것이다.
또 디자인 아트월에는 당시 수토사가 울릉도(독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 울진과 울릉도(독도)와의 거리, 월송만호가 있었던 월송포진성과 월송정. 수토사가 머문 대풍헌 건물, 마을주민들이 수토를 돕는 모습, 배에서 수토관이 독도를 발견하고 바라보는 전경 등 5단계의 순서로 표현하였다(안내문).

 

 

 

<사진 1>  우리나라에서 울릉도와 독도가 가장 가까운 곳은 울진군 죽변이다.

 

<사진 2>  수토사가 머물렀던 곳은 대풍헌이다.

 

<사진 3>  월송포진성의 모습.

 

<사진 4>  수토사의 모습

 

<사진 5>  수토사의 준비를 도우는 주민 모습.

 

<사진 6>  이 곳이 독도임을 확인한 수토관 모습

 

<사진 7>  수토사들이 타고 활동하는 배(수토선).

 

 

 

   <독도 조형물(獨島 造形物)>

  독도는 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하며, 해수면 위로 노출된 화산섬이다.

동도와 서도 외에 89개의 돌섬과 암초로 구성되어 있다. 독도는 울릉도의 동남향 87.4km에 위치하며, 울진군의 죽변과는 216.8km, 일본의 오끼섬과는 157.5km 떨어져 있다. 동도의 높이는 98.6m, 서도의 높이는 168.5m 이다.

고문헌 속에서 확인되는 독도의 명칭은 우산도, 삼봉도, 가지도, 석도, 독도 등이 있다. 우산도는 가장 오래 동안 독도를 부르던 명칭이다. 「삼국사기 1145」에 의하면 신라 지증왕 13년(512 6월)에 하슬라주(지금 강릉)의 군주 이사부가 우산국을 복속하면서 우리 영토가 되었다. 삼국시대부터 울릉도에 부속된 섬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고려시대 부터는 울진군의 관할하에 있었다.

1900년(고종 광무4년) 10월 25일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반포해 울도군을 신설하고 부속도서로 울릉도, 죽도, 석도(독도)를 관할하였으며, 울도군의 관할구역을 관보 제1716호(1900. 10. 27)에 수록함으로써 서양 국제법체제로서도 한국 영토로 재선포된 것이라 의미가 크다. 


이 곳 대풍헌 일대는 조선시대 울릉도와 독도를 수호한 수토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유적으로 수토사 정신을 계숭하여 국토수호 의지를 후세에 전하고자 독도 조형물을 만들었다. 이 조형물은 실제 크기를 35분의 1로 축소한 것으로 2015년 6월에 설치하였다(안내문).

 

 

<사진 1>  독도조형물 - 실제 크기의 1/35로 제작하였다.

 

<사진 2>  독도 조형물

 

<사진 3>  독도 조형물

 

<사진 4>  독도 조형물

 

<사진 5>  독도 조형물

 

<사진 6>  독도 조형물

 

<사진 7>  독도 조형물

 

 

 

   <바닷가에 자라는 나무와 풀>

 

<사진 1>  순비기나무가 꽃을 피웠다.

 

<사진 2>  순비기나무의 꽃

 

<사진 3>  해국

 

<사진 4>  개질경이.

 

<사진 5>  갯메꽃

 

<사진 6>  바닷가의 독활.

 

<사진 7>  밀사초로 보이는 풀.

 

<사진 8>  번행초.

 

<사진 9>  사방오리나무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