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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삼척 영경묘와 재실을 찾다.

죽림, 대숲, 사라미 2022. 11. 7. 16:09

 

<삼척 영경묘와 재실을  찾다>

 

1. 날짜 : 2022년 11월 2일
2. 동행 : 가족 탐방
3. 이야기
   삼척 준경묘와 영경묘를 찾는다고 하면서 2020년 10월 8일 준경묘 주차장에서 1.8km 떨어진 준경묘만 보고 영경묘는 사정이 있어 보지못했다. 그래서 한 번은 찾아봐야겠기에 오늘 집을 나섰다. 지금 까지 알고 있기로는 준경묘에서 약 4km의 거리에 있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자신이 지리에 어둡다보니 내가 알고있는 지식은 정확한 정보가 아닌 것 같다.
오늘 찾은 영경묘는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하사전리 산 53에 있다. 

준경묘는 삼척군 미로면 활기리에 있어 영경묘와의 거리는 약 4km이다. 준경묘와 영경묘의 중간 정도되는 곳에 두 묘의 재실이 있다.  재실의 위치는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99-1에 있고 재실에 들어가기전에 미로면 활기리 108에 성황당이 있다. 준경묘와 영경묘의 재실에는 차가 들어갈수 없지만 입구의 성황당터에는 넓은 주차장이 갖추어져있다. 어느 길을 가던지 준경묘, 준경묘와 영경묘 재실과 성황당, 그리고 영경묘를 살필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져 있다.

오늘 내가 찾은 순서는 영경마을의 영경묘를 살피고 고개를 넘어 준경묘 주차장에 가기전 왼쪽 하천변에 있는 성황당과 재실을 살폈다. 

그리고 준경묘는 지난번 살핀 곳이라 오늘은 다시 살피지 않고 평해에 있는 집으로 향하였다.
늘 마음속에 담고 있었던 영경묘와 재실 까지 살폈으니 이제 이 일은 일단락된 셈이다. 
오늘 살핀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본다. 부족한 부분은 더 보완해주기를 바라면서. 

 

 

 

 

              <영경묘를 찾다>

 

  삼척 영경묘(三陟 永慶墓) - 사적 524호
영경묘는 조선 태조의 5대조이자 목조(穆祖)의 어머니 이씨 부인의 무덤이다. 아들인 목조가 세력기반을 두고 살아온 전라도 전주지방 수령과의 불화로 신변에 위협을 느끼게 되자 백성 170여호를 거느리고 삼척으로 이주할 때 함께 와 살다가 별세하자 이 곳에 묘를 썼는데 왕이 날 좋은 자리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1393년에 삼척군이 목조의 외향이고 선대의 무덤이 있는 곳이라하여 부로 승격시키고 홍서대를 하사하였다.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은 1899년에 조칙을 내려 묘 이름을 경사스러운 나라가 오래도록 번창하라는 의미를 담은 「영경」으로 추봉하고 영건청을 설치하여 묘역 정비를 단행한후 관리직원 14명과 수호군 30명을 두어 준경묘와 함께 엄격히 관리하도록 하였다. 영경묘는 조선왕조 태동의 발상지로서의 역사성 뿐만 아니라 풍수지리적 가치 등 중요한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안내문). 

 

 

 <영경묘 가는 길 안내> 

 

 

<사진 1>  영경마을 표지판 - 영경묘가 있는 마을이니 영경마을이라.

 

<사진 2>  영경묘 주차장 - 동민들이 스스로 주변 청소를 깨끗이 하고 있었다.

 

<사진 3>  하사전리는 건강·장수마을이다.

 

<사진 4>  주차장과 가깝게 마을회관이 있다.

 

<사진 5>  알림판.

 

<사진 6>  영경묘 알림판.

 

<사진 7>  영경묘 가는 길.

 

<사진 8>  이 곳에서 영경묘 까지 거리는 약 200m 정도.

 

<사진 9>  투구꽃

 

<사진 10>  저 앞쪽에 홍살문이 있다.

 

<사진 11>  홍살문, 사당, 비각이 보인다. - 여기서 100m 정도 더 가면 영경묘가 있다.

 

<사진 12>  비석에는 '대한 영경묘'라 하였다. 준경묘에도 있다.

 

<사진 13>  사당과 비각 모습.

 

<사진 14>  응진수는 아닌것 같은데 여기서 물을 마셨다는 사람이 있으니 글쎄다.

 

<사진 15>  영경묘 가는 길 안내.

 

<사진 16>  금강송 줄기 모습

 

 

<사진 17>  영경묘.

 

 

<사진 18>  뒤쪽에서 본 앞의 모습.

 

 

<사진 19>  옆쪽에서 본 영경묘.

 

<사진 20>  우산나물이 철을 잊었는가?

 

<사진 21>  초피나무가 자라고 있다.

 

<사진 22>  감태나무.

 

<사진 23>  단풍나무.

 

<사진 24>  작살나무.

 

<사진 25>  분꽃나무.

 

<사진 26>  달뿌리풀이 자란다. 아주 청정지역이다.

 

 

 

      <활기리 하촌 성황당> - 안내문

  활기리에는 상촌과 하촌에 성황당이 있다. 상촌마을 입구인 석문교에 이르면 오른쪽으로 자그마한 언덕이 있는데 그 숲속에 서낭당이 자리잡고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어느날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고 폭풍우가 일어나며 마룡소에서 용이 등천할 때 용의 꼬리가 석문암에 부딛쳤는데 언덕이 무너지고 성황당이 소실되었다. 이 때 성황당 일부가 물에 떠 내려가고 지금의 하촌 성황당에 자리잡고 앉았다. 하촌 주민들은 이 자리에 성황당을 만들었고 상촌성황신이 내려오다가 이 곳에 자리 잡았기에 상성황과 본성황 2위를 모시게 되었다. 

하촌 성황당은 준경묘에서 영경묘로 넘어가는 등골고개의 초입 하천변에 자리잡고 있다. 당집 앞뒤로 팽나무 3본, 복자기나무 1본, 고용나무 5본 등 9본의 큰나무가 기이하게 생긴 바위들 틈에서 솟아나서 서낭당을 지키고 있다. 주민들은 이 바위들이 깨진 석문암과 함께 상성황이 떠내려왔다는 증거라고 믿고 있다. 
하촌 성황당 건립시기가 1904년(광무 8) 2월로 기록되어 있으며 지금의 성황당은 2019년 산립휴양치유마을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목조로 신축하였다. 하촌 주민들은 풍농, 풍요, 태평을 기원하고 외부의 나쁜 기운이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정월과 단오 두 차례 서낭제를 지내고 있다.
이 곳 서낭당에는 본성황신, 상성황신, 수부성황신을 모시고 있다. 이와 함께 당집 밖에서는 장광대신(토지지신)을 모시는데 주민들은 장광대신에게 마을에 홍수가 나지않게 해 달라고 빈다. 중앙에는 호랑이를 타고 있는 산신도가 걸려있고, 산신도 외에 말의 형상을 하고 있는 커다란 돌 덩어리 하나가 놓여있다. 주민들은 서낭신이 백마를 타고 활보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으며 서낭당이 말을 표상하기 때문에 말을 모셨다고 한다.
                          2019년 11월 30일
                  삼척시·활기리산림휴양치유마을 협동조합

 

 

 

<사진 1>  활기리 하촌성황당 모습.

 

<사진 2>  이 나무는 복자기나무 - 이렇게 잘 자란 복자기나무를 보기는 힘든다.

 

<사진 3>  성황당 둘레에 팽나무 3그루, 복자기나무 1그루, 고욤나무 5그루 모두 9구루가 자란다.

 

 

 

 <준경묘와 영경묘 재실>

 

 

 

<사진 1>  무궁화가 2그루 자라는데 아주 잘 자랐다.

 

<사진 2>  준경묘, 영경묘의 재실 모습 - 앞에 회화나무가 아주 잘 자랐다.

 

<사진 3>  회화나무의 모습 - 보호수로 지정 되었다.

 

<사진 4>  회화나무 안내.

 

<사진 5>  재실에 대한 안내 - 재실은 문이 잠겨서 안을 볼 수 없었다.

 

<사진 6>  담 너머로 본 내부 모습 - 향나무 1그루가 자라고 있다.

 

 

<사진 7>  내부의 모습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진 8>  담 밖에는 산국과 만수국아재비 등이 자라고 있다.

 

 

 

 

 

 

※  감사합니다. 부족한 것은 보태면서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