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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모명재(慕明齋)를 다시 찾다.

죽림, 대숲, 사라미 2023. 1. 7. 21:05

 

     <모명재(慕明齋)를 다시 찾다.>

 


1. 날짜 : 2022년 12월 28일
2. 동행 : 나미회 회원 셋(옥결)


3. 이야기
  오늘 오전에는 경산시에 있는 백자산을 살피고 오후에는 이 곳과 가까운 곳에 있는 모명재를 찾았다.


모명재는 임진홰란 때 명나라 원군을 이끌고 온 이여송 장군과 함께 우리나라에 온 명나라 장수 두사충을 모신 사당이다. 
있는 곳은 대구광역시 수성구에 있으며 지하철 2호선 만촌역과 가까운 곳이라 걸어가면 된다.  


 이 곳은 2015년 1월 3일 대구의 노래 속에 깃든 <고모령>을 찾아서 가던 당시에 길옆에 있는 모명재를 둘러본 일이 있었다. 말 뜻 그대로 고국인 명나라를 그리워하며 두 아들고 함께 귀화후 이 땅에 뼈를 묻은 장수 두사충의 나라사랑 혼이 깃든 곳이다. 


2021년 11월 15일 <모명재 길>이란 둘레길이 새로 생겨서 지인 현각님과 같이 또 걸어본 길이다. 이 날은 모명재를 보고 형봉, 제봉, 모봉, 그리고 예전에 이용되던 고모역 까지 살피고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돌아왔다. 
오늘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우리 나라에서 마친 장수 두사충을 다시 생각하면서 살핀 하루라 정리한다. 몇 번을 살펴도 다시 새로움과 가르침을 주는 모명재라서 지루함이 없이 새로운 사실들이 보였다. 

 

모명재 앞에는 주차장이 있고 그리고 역사적 사실에 의한 역사공원 같은 곳도 새로 생겼다. 

또 이순신 장군과의 만남과 그 인연이 후세에 까지 교류되고 있는 사실들도 다시 보는 새로움이었다.

장수 두사충이 두 전란을 마감하고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두 아들과 함께 우리나라에 귀화한 사실도 이 번의 살핌으로 다시 알게되었다.

그리고 장수이면서 풍수의 대가였다는 두사충이 자신이 묻힐 자리를 점지한 명당이 부근에 있을것이라는 예상도 해 보면서 실제 장수 두사충이 정한 곳에는 묻히지 못했다는 사실 또한 새로움의 연속이다.  
안내에 있는 모명재에 대한 내용을 덧붙이면서 오늘 본 내용을 올린다. 

모명재가 있는 곳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525길 14-21이다.
현재의 모명재는 1912년 경산 객사가 헐리자 그 재목을 사와 두사충의 묘소 앞에 지은 것인데 1966년 2월 건물이 너무 낡아 중수하였다. 
모명재는 네모 반듯한 대지에 남향으로 배치되었다. 
대문을 통해 들어가면 앞쪽에 모명재가 위치하는데,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겹처마팔작기와집이다.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이 있고 앞쪽에는 반칸 규모의 툇마루를 두었다. 모명재(慕明齋)라 한 것은 고국인 명나라를 사모한다는 뜻이고 대문에 달려있는 ‘만동문’ 역시 ‘백천유수필지동’이라는 말에서 따온 것인데 이것 또한 그 근본을 잊지않는다는 뜻이다. 
이순신 장군이 지어 보냈다는 한시가 새겨져 있는 대청기둥, 충무공의 7대손인 삼도수군통제사 이인수가 비문을 지은 신도비와 명나라에서 가져온 청석으로 다듬은 2점의 문인상이 있다. 

뒷산 형제봉 기슭에는 두사충의 묘소가 있다.

 

            <모명재>

 

<자료 1>  모명재 모습.

 

<자료 2>  만동문(萬東門)

 

<자료 3>  모명재에 대하여.

 

<자료 4>  모명재의 정면 모습.

           

 

<명정각>

 

 

 

      <이순신 장군과의 우정>

 

 

 

 

             <두사충 장수의 묘소>

 

 

 

 

      <두한필의 묘>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