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것 우리것

15. 평해 북천교비(平海 北川橋碑)를 찾다.

죽림, 대숲, 사라미 2023. 10. 10. 16:57

 

     <평해 북천교비 (平海 北川橋碑) 를 찾다>


1. 날짜 : 2023년  7월   21일
2. 동행 : 가족탐방
3. 이야기
이 비각을 본 것은 오늘 보다 이른 때이다. 이 곳은 월송정을 마주보는 옛 7번국도변에 있는 비각인데 늘 평해황씨 입향조와 관련된 것으로 이해하였다. 주변에 다른 것은 없고 도로변에 나지막한 비각만 서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위치가 월송정이 있는 북편 끝자락 군무봉을 akwnw보고 있는 곳이고 또 평해황씨 입향조의 묘가 있는 아래쪽이라 이 문중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이 곳을 살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 살펴보니 아주 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비석이다. 내용인즉 바닷물로 인해 사람들의 통행이 어려운곳을 더 편리하게 하기 위하여 평해군수의 승인을 받고 다리를 놓았다. 이 때 같이 힘을 합하여 일한 사람들의 이름과 도운 내용을 기록한 비석인데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비석에 새긴 내용이 마모되어 판독하기 어려울 정도로 되었지만 정신만은 길이 전해지고있는 비석이다.

오늘도 길옆에 혼자서 옛 일을 간직하고 우두커니 서 있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비석이기에 안내문을 중심으로 여기에 올린다.



평해 북천교비(平海 北川橋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평해 북천교비(平海 北川橋碑)는 조선 선조 36년(1603)에 세운 비석으로, 기성면 구산리와 평해읍 월송리 사이를 흐르는 사천(沙川) 인근에 있다. 
비석의 글씨는 해서체로 새겨져 있으나, 간혹 행서체나 초서체로 새겨진 부분도 있다. 
비석에 적힌 글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앞쪽에서 북천교를 세우게 된 경위와 연대가 적혀있다. 조선 후기 당시 사천은 바닷물과 맞닿아 있어서 항상 물이 흘러넘쳐 사람들이 지나다니기 불편한 곳이었다고 한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의견을 모아 평해군수 조인징의 허락으로 돌다리를 세우게 되었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그 다음으로는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 100여 명의 이름이 비석의 앞뒤로 적혀있다. 그 중에는 직접 공사를 했던 사람들뿐 아니라 공사를 위해 돈이나 음식을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도 있다. 
이 이름들을 살펴보면 ‘韓五十同한오십동:나이 쉰쯤된 동이, 金㗟石김줏석:주운돌이’, ‘李㗟沙里이줏사리:주운사리’, ‘金무音石김무음석:말못하는 돌이’, ‘黃唜丁황말정:막내 정이’, 林莻同임늦동:늦게 낳은 동이‘, ’鄭莫同정막동:그만놓을 동이‘, 奉奉봉봉:등 막 부르던 우리말 이름을 한자로 적은 것이 많다. 
이러한 내용은 당시 사람들의 신분과 사회 구조를 잘 보여준다. 특히 수많은 사람 이름을 당시 발음대로 적어두었다는 점에서 지역 사투리와 언어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