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

393. 오죽헌(烏竹軒) 율곡매를 찾다.

죽림, 대숲, 사라미 2024. 3. 23. 22:52

 

<오죽헌(烏竹軒) 율곡매를 찾다 >

1. 날짜 : 2024년 3월 22일
2. 동행 : 자유탐방
3. 이야기
  우리나라 4대 매화를 논할 때 항상 오죽헌 율곡매, 화엄사 화엄매, 백양사 고불매, 선암사 선암매를 이야기 한다. 선암매는 2023년에 살폈고, 화엄매는 2024년 2월 금둔사의 납월설중매와 함께 나무 모습을 살폈다. 
대구수목원 매화원에는 우리나라에서 이름난 매화나무들을 접목하여 2세 매화나무들을 만들었는데 해마다 꽃을 잘 피운다. 이 중에 율곡매도 올해 꽃을 활짝 피웠다. 꽃의 색이 너무 밝고 깨끗하여 실제 모습을 보고 싶어 오늘 강릉 오죽헌으로 간다. 벌써부터 오죽헌을 찾아 신사임당과 율곡의 흔적을 살피고 싶었지만 어디 그렇게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세월이 되지 못해 오늘에야 찾아간다. 그것도 일반교통을 이용하여 가는 길이다. 


  대구북부정류장에서 강릉 까지 가는 우등버스가 있다. 오늘 돌아와야할 입장이라 첫 차를 이용하여 간다.

아침 9시 40분 강릉을 경유해서 속초 까지 가는 우등버스다. 도중 제천(춘천 방향) 임시휴게소에서 10분 정도 숨을 고르고 계속 강릉시외버스터미널 까지 간다. 대구북부정류장에서 강릉시외버스터미털 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3시간 40분 정도라 한다. 아침 9시 40분에 출발한 버스는 오후 1시 20분에 강릉시외버스터미널에 들어선다. 
이 곳은 2023년 10월 개교 60주년 행사로 왔던 곳이다. 바로 택시가 있는 곳으로 가서 오죽헌으로 간다. 

 

  오죽헌 정문인 자경문을 들어서서 내가 꼭 살피고 싶었던 매화나무를 찾는다. 그런데 자경문을 들어서니 사임당 배롱나무가 먼저 사람을 맞는다. 그 옆에 선 율곡송도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배롱나무는 강릉시의 시화로 매화나무와 함께 사임당과 율곡 선생이 살았던 당시를 함께 한 오랜 역사를 지닌 나무라 더욱 뜻이 깊어 보인다. 
율곡선생을 모신 사당인 문성사(文成祠)에서 율곡선생을 뵙고 배롱나무, 율곡송, 또 박정희 대통령 기념식수인 주목을 본다. 


  오죽헌(烏竹軒) 옆에서 몇 백년의 역사를 안고 있는 매화나무를 찾는다. 바로 이 나무가 우리나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오죽헌 율곡매다. 나이가 600년을 훨씬 넘어 듣던대로 고목에서 새싹이 돋아 올해도 가지에서 꽃을 활짝 피웠다. 이 매화나무는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 484호 지정되어 있는 나무로 새로 활력을 찾아 더욱 왕성하게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감상한다. 오죽헌 율곡매를 찾았다가 나이가 많은 배롱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주목 까지 함께 보게 되었으니 오늘 큰 경사를 맞은 날이다. 이 곳이 그렇게 쉽게 왕래할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오죽헌에 있는 모든 곳을 돌아보고 이 곳을 나선다. 


  작년 허난설헌의 삶이 깃든 공원과 시설들을 돌아보고 이웃에 있는 오죽헌을 살피지 못한 서운함을 오늘에야 풀고 돌아간다. 삶이란 참으로 어렵고 인연이 있어야 모든 일에 닿는 것 같다.
빠른 걸음으로 살피고 시외버스터미널에 오니 아직 대구북부정류으로 가는 우등버스가 있다. 오후 3시 10분 출발하는 버스로 속초에서 출발하여 강릉을 경유하는 우등버스다. 오늘 계획한 일을 마무리 하였으니 뒷 일은 나를 싣고 나르는 버스에 맡긴다. 
오늘은 먼 곳에 있는 것들도 일반교통을 이용할수 있다는 것을 실제 체험한 날이다. 오늘 찾은 매화와 함께 오죽헌의 내용들을 올리기로 한다.

 

 

<사진 1>  오죽헌 정문.

 

 

 

<사진 2>  매표소 - 입장료는 어른 3000원, 군인과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 경로 및 국가유공자는 우대.

 

 

 

<사진 3>  강릉 오죽헌/ 시립박물관 안내도.

 

 

<사진 4>  스카이로켓향나무가 보이길래.

 

 

<사진 5>  율곡 선생 동상.

                '견득사의(見得思義) - 이로움을 보거든 옳은가를 생각하라.'

 

 

 

<사진 7>  오죽헌 안내도

 

 

 ①자경문 ②유적정화비 ③문성사 ④오죽헌(몽룡실)  ⑤바깥채  ⑥안채  ⑦어제각  ⑧율곡 기념관 ⑨입지문

 

 

<사진 8>  율곡선생 행장기(栗谷先生 行狀記)

 

 

 율곡 이이 선생은 1536년 음력 12월 26일에 이곳 오죽헌 몽룡실에서 이원수 공과 신사임당의 셋째 아들로 탄생하였다. 세 살에 말과 글을 익혀 열 살에 「경포대부」를 지었으며, 열 여섯에 어머니 신사임당이 세상을 떠나자 삼년간 시묘한 후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였다. 스무 살에 오죽헌에 돌아와 「자경문」을 지어 입신행도 할 것을 결심하였으며, 스물두 살에 성주목사 노경린의 딸과 혼인하였다.

열세 살 진사초시에 장원한 것을 시작으로 스물한 살 한성시에 장원급제하였으며, 스물세 살에 「천도책」을 지어 그 이름을 외국까지 떨쳤다. 스물아홉에 문과 전시에 장원급제하여 호조좌랑에 임명되었다. 아홉 번의 크고 작은 과거에 모두 급제하여 구도장원공으로 불리기도 했다.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 이조좌랑, 홍문관교리, 우부승지, 사헌부대사헌, 예문관제학, 사조(호조, 형조, 병조, 이조)의 판서를 역임하였으며, 서른세 살(1568년)에는 천추사의 서장관으로 북경을 다녀오기도 하였다.

교육자, 철학자이자 경세가인 선생은 백성을 근본으로 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만언봉사」를 지어 정치, 경제, 사회 개혁을, 「동호문답」과 「성학집요」를 지어 군왕의 도를 개진하였다. 또한 국방을 튼튼히 하기 위하여 군사 십만 명을 양성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향약을 제정하여 지방자치제를 장려하고, 사창제도를 시행하여 빈민을 구제하기도 하였다.

정계를 떠난 후에는 고산구곡에 은병정사를 세우고 후학 양성에 힘을 기울였는데, 이 때 『격몽요결』과 『학교모범』을 저술하였다.

1584년 마흔 아홉에 세상을 떠났으며, 40년 뒤인 1624년 인조대왕이 '문성'이라는 시호를 내렸다(안내).

 

<사진 9>  자경문

 

 

  자경문은 오죽헌의 안팎을 가르는 문이다. 율곡은 어머니를 여읜 후 금강산에 들어갔다가 유학에 뜻을 두고 일 년 만에 돌아왔다. 그때 강릉 외가로 와 외할머니 앞에서 '스스로 경계하는 글'이라는 <자경문>을 지었는데 거기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문은 '강릉 임영관 삼문(국보 제51호)'과 같은 모양으로 1976년 4월에 건립되었다.(참고)

 

 

<사진 10>  문성사(文成祠)

율곡 이이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이 자리에는 원래 어제각(御製閣)이 있었으나, 1975년 오죽헌 정화사업때

서쪽으로 옮기고 대신 문성사를 지었다. '문성(文成)'은 1624년 인조 임금이 율곡에게 내린 시로(諡號)로, 

'도덕과 학문을 널리 들어 막힘이 없이 통했으며 백성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정사(政事)의 근본을 세웠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문성사의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 친필이다.

 

 

 

<사진 11>  사임당 배롱나무 - 이 나무는 나이가 600년이 넘는 노거수다.

 

 

 

<사진 13>  나무는 율곡송. 

소나무는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는 군자식물이다. 곧은 덕과 굳센 절개에 대하여 옛 사람들은 친찬을 아끼지 않았다.

율곡 선생은 '우송당기(友松堂記)'에서

  "이 소나무의 기이한 형상을 보니 천공(天功)의 오묘한 조화를 빼았았다. 한참을 바라보노라면 청아한 운치를 느낄 것이다. 소나무가 사람을 즐겁게 하는데 어찌 사람이 즐길줄 모르는가!"

라고 했다.

 

 

 

<사진 14>  1976년 5월 박정희 대통령이 율곡선생 유적지 정화사업 기념으로 심은 주목. 

 

 

 

 

<사진 15>  오죽헌(烏竹軒)

  조선 초기에 지어진 별당 건물로 당시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주택이다. 

이 건물은 주심포양식(柱心包樣式)에서 익공양식(翼工樣式)으로 변해 가는 건축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건물로 평가받아 1963년 보물 제165호로 지정되었다. 왼쪽 마루방은 율곡이 여섯 살 때까지 공부하던 곳이며, 오른쪽 온돌방은 1536년 신사임당이 용이 문머리에 서려있는 꿈을 꾸고 율곡을 낳은 곳이다. 몽룡실(夢龍室)이라고

부르는 이 온돌방에는 신사임당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사진 17>  강릉 오죽헌 율곡매(江陵 烏竹軒 栗谷梅) - 천연기념물 제484호

  이 나무는 세종 22년(1440년)경에 이조참판을 지낸 최치운이 오죽헌을 건립하고 별당 후원에 심었다고 하며,

신사임당과 율곡 선생이 직접 가꾸었다고 전한다.

사임당은 여러 매화그림을 그렸고 맏딸의 이름을 매창이라고 지을 만큼 매화를 사랑하였다.

율곡매는 꽃 색깔이 연분홍인 홍매 종류이며, 열매는 다른 나무에 비하여 훨씬 알이 굵은 것이 특징이다.

 

 

 

(대구수목원 매화원의 율곡매)

 

 

<사진 23>  율곡기념관.

 

 

 

 <사진 24>  앞에서 본 전체 모습.

 

 

 

 <사진 25>  입지문(立志門)

 

 

  입지문은 오죽헌의 남문으로 『격몽요결』의 첫 장인 「입지장」에서 따온 이름이다. 『격몽요결』은 율곡이 42세(1577)때 해주석담에서 저술한 책으로 초학자들에게 학문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유학의 입문서이다. 책의 이름은 몽매함을 물리치는 요긴한 비결이라는 뜻이다. 율곡은 「입지장」에서 "처음 학문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맨 먼저 뜻부터 세워야 한다. 그리하여 자기도 성인이 되리라고 마음먹어야 한다."라고 했다. 

학문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뜻을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참고)

 

 <사진 26>  화폐 전시관.

 

 

 

 <사진 27>  사임당 신씨에 대하여.

 

 

  기묘사화때 난을 면한 아버지 신명화와 어머니 용인 이씨의 다섯 딸 가운데 사임당은 둘째 딸로 1504년 음력 10월 29일에 이곳 오죽헌에서 태어나 1551년 5월 17일에 세상을 떠났으니 향년 48세이다. 

덕수 이씨 원수에게 출가하여 일곱 남매를 두었고 우리나라 백세 스승이라 이르는 율곡은 셋째 아들이다. 

사임당은 우리 역사에서 다시 찾을 수 없는 여성으로 부덕은 만인의 사표가 되었고 천부의 자질이 남달리 비범하여 여공은 말할 것도 없고, 글씨, 그림, 학문, 예술에 이르기까지 천재가 발휘된 작품과 업적이 오늘까지 남아 전하며, 뒷세상 사람의 우러름을 받고 있다. 사임당은 율곡과 같은 거벽을 길렀을 뿐만 아니라 매창과 옥산과 같은 자녀를 두었으니 이들은 다 어머니의 자질과 훈도에 연유하여 서예나 그림에서 재능을 발휘하였다. 우리 역사에서 남성은 서로 견주어지는 인물이 있으나 여성으로서는 사임당과 견줄 인물은 찾기 어려우니 사임당이 우리 민족의 만세의 여성상이라 이를 것이다.

 

 

 

 <사진 29>  오죽헌은 오죽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오죽은 줄기가 검은색인 대를 말한다. 오죽헌 주변에 많이

                 자란다.

 

 

 

 <사진 30>  강릉시립박물관.

 

 

 

 <사진 32>  율곡인성교육관

 

 

 

 <사진 37>  바깥채 - 사랑채

 

 

 

 <사진 40>  안채

 

 

 

 <사진 44>  자경문을 다시 보다.

 

 

 

<사진 45>  가는 도중에 잠시 쉬었던 임시휴게소.

 

 

 

 


참고 : https://www.doopedia.co.kr/travel/viewContent.do?idx=200729000106728

 

두피디아 여행기-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있는 강릉 오죽헌

두산그룹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백과. 백과사전, 포토커뮤니티, 지구촌여행기 서비스

www.doopedia.co.kr

 

https://m.blog.naver.com/represent-/221605918283

 

강릉 가볼만한곳 오죽헌(+관람순서, 꿀팁)

알고보면 더 재미있다!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생가 사계절이 아름다운 오죽헌 우리나라 보물 제165조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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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참고 자료를 이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