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

394. 병산서원홍매를 찾다.

죽림, 대숲, 사라미 2024. 4. 3. 09:00

 

     <병산서원홍매를 찾다>


1.날짜 : 2024년  3월   27일
2. 동행 : 가족탐방


3. 이야기

  가까우면서도 자주 찾지못한 병산서원을 간다. 동행은 가족과 함께다. 
대구수목원에는 전국의 이름있는 매화나무의 순을 접목하여 2세매를 키우고 있다. 이름하여 대구수목원매화원이라 자칭(自稱)하였다. 

여러 매화들 중에는 납월설중매처럼 일찍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는가하면 아주 늦게 꽃을 피우는 나무도 있다.지금 까지 보아서 비교적 늦게 꽃을 피우는 매화는 전남대학교에 있는 대명매와 병산서원 홍매다. 병산서원은 하회마을 인근에 있어 비교적 가까운 거리다. 그런데 매화들 중에서 비교적 화사하게 꽃을 피우는 나무들이 특히 눈에 띄는데 병산서원의 홍매와 오죽헌 율곡매가 그러하다. 
야단스럽지 않고 간결하면서도 깨끗한 인상을 주는 나무다. 수목원의 병산서원홍매는 지금 꽃을 정리하고 있다. 안동은 대구보다 날씨가 추우므로 3월 말 정도면 꽃이 활짝 필 것으로 예상하고 오늘 병산서원 홍매를 찾아가는 길이다. 그런데 서원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구곡을 생각해서인지 화산을 지나면서 도로가 포장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누구말대로라면 버스도 다니고 작은 승용차도 잘 다니긴 한다고 하는데, 시멘트로 덮은 곳도 있고 또

일부는 포장처럼 된 곳도 있다. 하여튼 누가 말한 것처럼 한 마디로 비포장도로다. 명색이 우리나라의 유명한 분을 모신 서원이고 또 유네스코에 등재될 겅도로 알려진 곳이라면 최소한 오가는데 불편이 없게 도로 정도는 손질되었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중앙고속도로를 달려 병산서원 주차장에 들어선 시각은 정확하게 10시다. 오늘따라 학생들과 일반인들의 방문이 더 많은 것 같다. 내용은 깊어도 보기에는 간결하고 친근한 감이 든다. 언젠가 이 서원을 찾은 일이 있는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않는다. 서원앞 넓은 공간에는 부시 미국대통령 내외분의 방문을 기념하는 알림석과 기념식수한 나무도 있고, 서원에 대한 안내 또한 잘 되어있다. 


  복례문을 들어서면 만대루가 맞는다. 그리고 왼,쪽에 작은 연못 광영지가 있다. 만대루를 올라서면 강학영역인 병산서원이다. 그리고 더 안쪽으로 가면 보호수 배롱나무가 있다. 여기가 제향영역인 내삼문과 사당 존덕사다. 서애 류성룡 선생과 아들 성룡 류진 선생을 모신 곳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 곳은 개방되지 않았다. 강릉 오죽헌은 평일 문성사를 개방하여 율곡 선생을 맞아 예를 올릴수 있었는데 오늘은 그런 기회가 없어 서운하기도 하다. 이곳 까지 오면서 생각은 병산서원에는 백매와 홍매가 있는데 백매는 좀 일찍 꽃을 피우고 백매가 질 무렵 홍매가 꽃을 피운다고 했는데 나무가 모두 잘 자라서 매우 큰 나무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백매와 홍매 나무 두 그루는 아담하고 아름다운 수형이다. 서쪽의 백매는 꽃을 정리하였고 동쪽의 홍매는 예상대로 활짝 피어 때를 잘 맞춘 것 같다. 오늘은 홍매를 보려고 왔으니 홍매를 더 잘 살펴야 한다. 이 홍매는 어릴때는 꽃망울이 붉은편이나 활짝 피면 흰색에 가까운 연한 홍색이라 홍매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해를 못하면 홍매로 보기에 주저할 정도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붉은 빛이 감도는 매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병산서원은 화산을 뒤로하고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자리에 터를 잡았다. 오늘은 만대루를 개방하지 않았지만 만대루에서 바라보는 하회 제1경 병산의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고 하니 언제 기회가되면 만대루에 올라서 병산을 감상하기로하고 오늘은 병산서원 백매와 홍매에서 마무리하기로 한다. 
병산서원을 이야기하면서.

 

 

   병산서원은 사적 제260호로 지정되어 있다.
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 1542-1607) 선생이 선조 8년(1575)에 지금의 풍산읍에 있던 풍악 서당을 이 곳으로 옮겨온 것이 병산서원의 처음 모습이다. 
류성룡은 선조 때 도체찰사와 영의정을 지냈던 정치가이며 유학자로, 1607년에 타계한 뒤 1614년에 그를 따르던 제자와 유생들이 이 곳에 위판을 모시는 사당을 세웠다. 이로써 학문을 연구하는 강학(講學)공간과 제사를 지내는 제향(祭享)공간을 모두 갖춘 정식 서원이 되었으며, 철종 14년(1863)에 ‘병산’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고종 때 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에도 헐리지 않고 그대로 살아남은 47개의 서원과 사당 중 하나이다.
서원의 정문인 복례문(復禮門)과 만대루를 지나면 강당과 동재, 서재가 있다. 동재 뒤편으로 서 있는 것은 서원 관리인이 살았던 고직사(庫直舍)이고, 입교당의 서쪽 뒤편에 서 있는 것은 목판과 유물을 보관하는 장판각(藏板閣)이다. 입교당의 동쪽 뒤편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 사당으로 들어가는 내삼문과 사당인 존덕사(尊德祠)가 있고, 내삼문 동쪽에는 전사청(典祀廳)이 있다.

열려있는 복례문 앞에 서서 안쪽을 바라보거나, 서원 안에서 만대루를 통해 바깥을 내다보면 어디 하나 막힘이 없이 탁 트여 있어 건물과 건물 밖의 자연이 하나인 듯 느껴진다.
병산서원은 서원이 번성하던 시기의 한 본보기로 여겨질 만큼 지은 솜씨가 빼어나고 보존이 잘 되어있으며,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지은 점에서 ‘한국 서원 건축의 백미’로 이름나 있다(안내에서)

 

 

<사진 1>  병산서원 관리사무 및 문화해설사 근무소.

 

 

 

<사진 2>  여기는 병산서원.

 

 

 

<사진 3>  하회구곡의 제1곡인 병산(屛山) 모습

 

 

하회구곡(제1곡)  병산(屛山)
하회구곡의 제1곡 병산은 병산서원 맞은편에 위치한 병풍처럼 펼쳐진 산이다. 병산서원은 새애 류성룡(1542-1607) 선생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서원으로 하회마을의 주산인 화산을 등지고 낙동강을 품고 있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을 갖추고 있다.

 
  낙동강 근원있는 물이 동쪽에서 흘러내리고(洛上源流出自東)
  병풍바위의 우뚝한 절벽이 그 안을 에워쌌네(巖屛峭壁抱其中)
  구름낀 병산에 서원 서니 강이 섬처럼 둘러(雲屛作院江環島)
  일곡이라 이름난 터에 버드나무 나부끼누나(一曲名基柳樹風)

 

 

<사진 4>  '한국의 서원'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사진 5>  병산서원의 정문 '복례문'

 

 

 

 

  격물치지(格物致知)
병산서원의 복례문(復禮門)과 만대루(晩對樓) 그리고 광영지(光影池)가 있는 이곳은 서원의 사색을 위한 공간이다. 복례문은 극기복례(克己復禮)를 통해 인(仁)을 실현하고자 하는 서애 선생의 학문의 뜻이며, 만대루는 병풍처럼 둘러쳐진 병산의 산수를 만나기 위한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공간이며, 광영지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로서의 연못을 맑게 하기 위해 늘 신선한 물을 공급하듯이 생각(思惟)의 근원인 책읽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는 서애 선생의 가르침이 담겨있다. 맑은 날 거울 같은 연못으로 하늘빛과 구름이 내려오고 저물 무렵 병풍처럼 둘러친 산수를 마주하며, 흘러가는 물처럼 한결같은 마음으로 학문하고, 예(禮)를 배우고 실천하는 가운데 인의 세계로, 세상의 바른 이치로 다가갈수 있음을 상징화하여 드러낸 것이다.

 

 

 

<사진 7>  만대루 (晩對樓)

   만대루는 유식공간으로 휴식과 강학을 하였다. 서원에서 향사를 지내거나 행사를 할 때 개회와 폐회를 알리는 곳이기도 하고, 주로 강학공간으로 활용하였다. 
‘만대’라는 이름은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시 ‘백제성루(白帝城樓)’ 중 “푸른 절벽처럼 둘러쳐진 산수는 저녁 무렵 마주하기 좋으니(翠屛宜晩對).”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실제로 저녁 무렵 만대루에 오르면 병풍을 두른듯한 산과 낙동강의 훌륭한 경치를 즐길 수 있다.
만대루는 목재를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장식과 기교도 없이 꼭 필요한 요소만을 갖추고 건축했다. 

휘어진 모습 그대로 서 있는 기둥들과 자연 그대로의 주춧돌, 커다란 통나무를 깎아 만든 계단 등은 건축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한국 전통 건축의 빼어난 멋을 그래로 보여준다.

 

 

 

<사진 9>  광영지(光影池)

 

 

광영지(光影池)

광영지는 선비들이 마음을 닦고 학문에 정진할수 있도록 배려한 ‘서원 속의 정원’이다.

광영은 주자의 시 관서유감이란 시 중에서 ‘하늘빛과 구름이 함께 노닌다(天光雲影共徘徊)’라는 구절에서 인용하였다.

네모난 연못 가운데 둥근 섬이 있는데, 이러한 한국 전통 연못의 모습을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고 한다.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의 뜻으로, 동아시아 사회의 전통적인 우주관이자 세계관을 나타낸다.



학사위주(學思爲主)
서애 선생은 “배움은 생각을 위주로 해야 한다”라고 하였고, 중용에서 학문의 단계를 ‘박학, 심문, 신사, 명변, 독행’이라 하면서 신사를 가운데 둔 것과, “성현이 생각을 위주로 하여 학문을 하였듯이, 단순히 입으로 외는 공부가 아니라, 정성을 다해서 마음(心)의 밭을 갈고 다스린다면, 하늘의 이치(天理)가 절로 밝아질 것이다.”라고 한 것은, 모두 학문에는 생각을 신중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사진 10>  병산서원백매 - 병산서원 앞마당 서쪽의 백매.

 

 

 

<사진 12>  병병산서원 마당의 동쪽에는 홍매가 자란다.

 

 

 

<사진 16>  병산서원 입교당과 동재, 서재.

 

 

 

<사진 17>  제향영역인 내삼문과 존덕사.

 

 

 

<사진 18>  보호수와 비슷한 나무가 네 그루인데 모두 보호수로 지정되었으면 좋겠다.

 

 

 

<사진 19>  화산으로 가는 길인데 길에서 본 병산서원 모습.

 

 

 

<사진 20>  산서원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화악서원 모습.

 

 

 

<사진 21>  소나무인데 계속 왕성하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다.

 

 

 

 

 

   ※  감사합니다. 이해를 위해 안내자료를 이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