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

60. 충주의 임충민공 충렬사에 있는 나무들

죽림, 대숲, 사라미 2012. 4. 7. 20:17

 

     2012년 4월 1일 충주에 있는 임충민공충렬사(林忠愍公忠烈祠)에 가다.

 

       전에 몇 번 들렀으나 근래에는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여 충렬사에 들러보았다.

       주차장은 깨끗이 정비되어 있고 관리사무소 뜰 앞에는 새봄을 맞은 생강나무가 꽃을 피워 손을 맞고 있다.

 

 

        차장에서 바라본 충렬사 사당 모습이다. 둘레에 소나무가 서 있는 모습이 가상하다. 늘푸른 잎같이 변함없는 나라 사랑을 말함이

       아니겠는가? 여기에 덧붙여 소나무와 더불어 우리 나라 꽃 무궁화도 심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더욱 키우면 어떨까? 하필이면

       영산홍을 심어 조경을 하기에 힘쓴 까닭은 무었인가?

       우리의 꽃 무궁화를 심어 마음껏 자라 꽃피우게 가꾸면 그 뜻이 더욱 빛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사당을 관리하는 사무소가 주차장 앞에 자리하고 있다.

 

 

       언제 보아도 좋은 우리의 소나무다. 사당 부근에 심은 나무라 더욱 보배스럽게 느껴진다.

 

 

 

       임충민공충렬사(林忠愍公忠烈祠)의 소재지는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 사적 제189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이 곳은 조선 인조 때의 명장 임경업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선조 27년(1594) 충주 대림산 기슭에서 태어난 장군은 어려서부터 학문과 무예에 뛰어났다.

       광해군 10년(1618)에 무과에 급제한 후 요직을 두루 맡아 선정(善政)을 베풀었을 뿐만 아니라 국토방위를 위하여 많은 공헌을 남겼다.

       인조 2년(1624)에 이괄의 난이 일어나 나라가 크게 동요되었을 때에 장군은 반란군을 진압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고, 정묘, 병자호란의

       국난을 당하여 나라가 위기에 처하였을 때, 국방강화에 노력하고 청나라에 대항하여 싸웠으니 실로 장군은 나라의 기둥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장군의 위업에도 불구하고 심기원의 내란사건(1644)에 연루되어 억울한 일생을 마쳤다.

       그후 누명에서 벗어나 조정에서는 숙종 23년(1697)에 사당을 세웠고, 숙종 32년(1706) 장군에게 충민의 시호(諡號 : 죽은 후에 살아

       있을 때 공적을 칭송하여 주던 이름)를 내렸다. 영조 3년(1727)에는 이곳을 '충렬사'라는 이름으로 임금이 직접 지어 주었다.

       그후 1978년 정부의 특별지원으로 성역화되어 오늘의 규모로 확장, 정비되었다(안내문 참조)

 

       충렬사의 안내도이다. 제일 안 쪽이 사당이다. 첫문을 들어서서 오른쪽 건물이 유물전시관이다.

 

 

       모든 사람들은 말에서 내려서 들어가라는 하마비다.

 

 

       하마비를 지나면서 가운데 심은 나무는 스트로브잣나무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을 밀해준디, 이 나무도 소나무를 심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화단 가운데에 심어진 멋있는 나무! 소나무다. 나이가 200살 정도 된다소 하였는데 보물이다.

 

 

       스트로브잣나무가 시원하게 그늘을 지워주고 있다.

 

 

       섬잣나무의 줄기와 잎이 무성하게 잘 자란다.

 

 

       섬잣나무도 큰나무가 되니 느낌이 이상한 나무가 된다.

 

 

       임경업 장군의 유물이 전시된 전시관이다.

       장군이 쓰시던 칼은 용천검과 추련검이 있는데 전장에서 싸울 때 사용한 칼은 용천검이다. 이 검에 새겨진 글은 아래와 같다.

           삼척의 용천검에 만권의글이 있으니

           황천이 나를 낳으신 그 뜻이 어떠한가

           산동에 재상나고 산서에 장군나니

           저들이 대장부면 나 또한 대장부다.

 

      아깝게도 용천검은 실물은 없고 기록만 있다. 그러나 늘 아끼던 보검인 추련검은 유물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다.

 

 

       중문의 담 밖에 심어진 소나무의 기개가 무척 자랑스럽다. 정말 자랑스럽게 잘 자라고 있다. 소나무도 이렇게 잘 자라는 나무임을

       보여주고 있는것 같다.

 

 

       비각이다. 왼쪽이 어제달천비이고 오른쪽이 정렬비이다. 나란히 세워져 있다.

 

 

       어제달천비의 모습

 

 

       어제달천충렬사비의 내용

 

 

 

          정렬비(貞烈碑)

       1747년(영조 23년) 임경업 장군의 부인인 전주이씨(혹은 완산이씨)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렬비다.

       1643년 임장군은 명,청간의 싸움에서 청나라의 지원을 나갔지만 명나라를 도와 전투에 임하였고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된 청은

       임장군을 압송하던 도중 임장군을 놓쳐버렸다. 청은 이에 그의 부인을 잡아 청나라 심양에 있는 옥에 가두었다. 부인은 갖은 고문과

       고초를 당하였지만 장군의 아내답게 옥중에서 자결하였으니 나라에서 부인의 충절을 기려 정렬비를 세우게 되었다(안내문에서)

 

 

       1978년 11월 23일 박정희 대통령이 기념식수로 심은 주목이 싱싱하게 자란다.

 

 

       이 문을 들어서면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서 왼쪽 문으로 나오면 된다.

 

 

       충렬사(忠烈祠) 전경이다. 참배를 마쳤다.

 

 

 

 

 

     ※  나라 사랑하신 분을 모신 사당 주변을 살폈습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