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문은 넓게

70. 예연서원(禮淵書院)을 찾아서.

죽림, 대숲, 사라미 2016. 11. 6. 19:47

           예연서원(禮淵書院)을 찾아서.

 

    1. 날 짜 : 2016년 11월 3일

    2. 이야기

          예연서원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가태리 585 번지에 있는 망우당 곽재우 장군과 곽준 선생을 모신 서원이다.

         이 서원을 찾은 것은 11월 3일 오후 1시를 넘긴 시각이었다.

         마을 앞에 도착했을 때는 망우당 곽재우 장군나무가 신도비 앞에서 찾는 방문객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비각 안에는 곽재우 장군과

         곽준 선생의 신도비가 모셔져 있었고 출입문은 오랜 세월 비바람을 이겨낸듯 열려져 있었다. 곽재우 장군나무가 신도비각 앞에 우뚝

         서서 예연서원이 있음을 안내해주는둣 했다. 다음은 예연서원에 대한 안내된 내용을 인용한 것들이다.

 

       <홍의장군(紅衣將軍) 신도비(神道碑)와 충렬공(忠烈公) 신도비(神道碑)>

          ●  있는 곳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가태리 585번지에 있다.

          ●  홍의장군 신도비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국난극복에 큰 공을 세웠던 홍의장군

             망우당 곽재우 장군의 업적을 기록한 비다.

          ●  충렬공 신도비는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안음 현감으로 재직하면서 경남 함양의 황석산성을 지키다가 순절한 충렬공 곽준

            선생의 업적을 기록한 비다.

          ●  곽재우(1552-1617) 장군의 신도비는 1761년(영조 37)에 이 곳에 건립되었으며,

            곽준(1551-1597) 선생의 신도비는 1634년(인조 12)에 현풍 대리(소레마을)에 세웠던 것을 곽재우 장군의 신도비를 건립하면서

            이 곳으로 옮겨 함께 모시게 되었다.

 

 

 

 

       <충렬, 충익공 신도비각을 새로 짓고 나서>
          1950년 6.25 때 비각이 소실됨에 따라 신도비도 함께 전화를 입어 손상되었다. 손상된 신도비는 1957년 탁본, 접자 등을 통해

        원형에 충실, 정부 주관으로 복원하였다.

        이에 유림에서도 신도비가 풍우는 피하도록 함이 마땅하다고 여겨 비각을 재건했던 것이다. 이제 그 비각마져 노후화하여 신도비와

        함께 서쪽으로 6.3m 옮겨 새로 지었음을 밝혀두면서 달성군의 아낌없는 지원에 사의를 표하는 바이다.

 

 

 

 

 

       <‘땀 흘리는 신도비‘ 이야기>
          곽재우, 곽준 신도비는 ‘땀 흘리는 신도비’로도 유명하다.
         비각이 비를 맞는 곳도 아닌데 국란이 있을 때 두 분의 비신에는 땀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2006년 2월 14일에는 신도비가 땀을 흘린다는 주민들의 신고가 유가면사무소에 들어와 확인 결과 두 비석의 표면에

         수십개의 물줄기와 물방울, 물기 등이 발견되었다.

         동네 노인들의 말에 의하면 한일합방 때, 2차대전 때, 6.25한국전쟁 때도 땀이 났으며, 전쟁중에 신도비가 소실되어 다시 복구했는데도

         4.19와 5.16 때도 땀이 났다고 전한다. 아래는 두 분의 신도비 모습.

 

 

 

          신도비각 앞에 우뚝 선 곽재우 장군나무.

 

 

 

 

          신도비각 옆의 향나무는 줄기를 전지하였는데?

 

 

 

 

          반겨주는 이 없어도 잘 자라는 미국자리공.

 

 

 

 

          신도비각과 곽재우 장군나무 - 느티나무.

 

 

 

 

          이 나무는 은행나무인데 곽준 선생나무다. 예연서원을 나서면 우뚝 서 있다. 나무 아래로 보이는 건물이 예연서원..

 

 

 

          곽준 선생나무 모습.

 

 

 

 

 

 

       <예연서원>

 

          이 서원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망우당 곽재우 장군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하여 선생 서거 이듬해인 1618년  광해군 10년

         현풍 유림들이 현 위치에 충현사를 건립한 데서 비롯되었다.

         1674년 현종 15년 정월 당시 현풍현감인 류천지(柳千之)가 규모를 확장하여 서원으로 개칭하고 같은 해 7월 존재 곽준(存齋 郭䞭)

         선생을 배향하였다.

         1677년 숙종 3년에 예연서원으로 사액되었으며, 6.25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정부계획에 의하여 1977-1986년에 걸쳐 복원한

         것이다. 이 서원도 여느 서원처럼 맨 위쪽에 두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를 드리는 사당인 충현사(忠賢祠)가 있고, 그 앞쪽에는

         학생들을 교육하는 강당인 경의당(景義堂)이 있으며, 부속 건물로는 전사청(典祀廳), 장판각(藏版閣) 등이 있다. 지금 걸린 서원과

         사당의 현판 글씨는 복원에 대비하여 1958년 우남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미리 써 준 것이다.

 

 

          예연서원의 숭의문.

 

 

 

 

          숭의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자리한 예연서원 - 경의당이 있는 건물.

 

 

 

 

          예연서원의 현판 - 글씨는 이승만 대통령 - 안 쪽에 경의당이 보인다.

 

 

 

          곽재우 장군과 곽준 선생의 위패를 모신 충현사.

 

 

 

          여기가 전사청인데 빨리 보수를 해야할 것 같다.

 

 

 

          나무라도 키가 작으면 임시는 피할 수 있다. 위기를 넘긴 구골나무가 꽃을 피웠다.

 

 

 

 

 

          ●  여기서 부터는 좀 생각을 해야할 일들이라서 사진만 제시한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