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

240. 이야기가 살아 숨쉬는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

죽림, 대숲, 사라미 2017. 2. 3. 08:52

 

        이야기가 살아 숨쉬는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

 

    1. 날 짜 : 2017년 1월 25일

    2. 동 행 : 나미회 회원들.

    3. 이야기.

          옻골마을은 경주 최씨 대암공파 후손들이 모여 사는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을 찾았다.

        이 마을을 찾은 까닭은 대구지방에 현존하는 조선시대 고택으로는 가장 오래된 만가로 옛 생활사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는

        백불고택이 있고, 담장길의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기에 이야기와 함께 하는 오래된 나무들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연 생각대로 지난 날과 오늘이 함께 하고 있는 돈산동 옻골마을임을 확인할수 있었다. 이 마을이 금호강 보다 높은 위치에 있어

        나쁜 기운이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비보숲도 있고, 흙과 돌로 쌓은 토석담을 침엽수로 덮은 독특한 담장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이 마을에는 문화해설사가 일하는 집도 있고 또 마을 입구에서 바라보면 마을이 짜임새 있게 되어 있으며 입구 좌우에 잘 자란 느티나무

        두 그루가 길손을 맞는다. 그리고 광해군 8년 이 옻골마을에 터를 잡은 경주최씨 대암공파 파조이신 최동집 선생을 기리고자 350년이

        훨씬 더된 회화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함과 동시에 최동집 나무라 이름 붙인 나무도 있다. 현재 회화나무는 자라는 상태가 아주 좋아

        봄에는 꽃으로, 여름에는 그늘로 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을 자랑하며 사철 잘 자라고 있다.

        오늘 본 내용을 차례로 소개하고자 한다.

 

    <사진 1>  문화관광 해설사가 있는 집이다. 주차장 바료 옆에 위치하고 있다.

 

 

 

    <사진 2>  마을 입구에 있는 쉼터공원이다. 흰말채나무가 유난히 눈에 띈다.

 

 

 

    <사진 3>  쉼터공원의 정자.

 

 

 

    <사진 4>  목서나무.

 

 

 

    <사진 5>  쉬나무로 보이는 나무도 있다.

 

 

 

 

    <사진 6>  이 나무들이 동서 방향으로 심어진 비보숲 나무들이다. 수종은 느티나무.

 

 

 

    <사진 7>  비보숲 모습.

 

 

 

    <사진 8>  비보슾에 대하여.

 

 

 

    <사진 9>  왼쪽 보호수인 느티나무.

 

 

 

 

    <사진 10>  입구 오른쪽의 보호수.

 

 

 

    <사진 11>  보호수들.

 

 

 

 

    <사진 12>  최동집(崔東집)나무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365에 있으며 수종은 회화나무다.

                최동집(1586-1661)의 호는 대암(臺巖)이며, 아버지 최계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한 분이다. 

                한강 정구(鄭逑) 선생으로부터 학문을 배웠으며, 광해군 8년(1616년)에 이 곳 둔산동 칠계(漆溪), 즉 옻골에 정착했다.

                효종이 대군으로 있을 때 효종을 모시고 청나라에 인질로 가다가 중도에 교체되었다. 명(明)나라가 망하자 숭정처사(崇禎處士)를

                자처하여 부인동에서 은거하며 평생을 벼슬에 나가지 않고 제자를 가르치고 주민을 교화했다.

                이 마을은 대구시 민속자료 제1호로 그가 살던 집은 대구지방에 현존하는 민가로는 가장 오래되어 조선시대 생활양식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나이 350년이 더 되는 이 회화나무는 경주최씨 대암공파(臺巖公派)의 파조(派祖)이자 지역사회 문풍진작에 크게 기여한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최동집(崔東집)나무’라 이름 붙였다.

 

    <사진 13>  입보호수에 대하여.

 

 

 

    <사진 14>  최동집 나무.

 

 

 

    <사진 15>  최동집 나무.

 

 

 

    <사진 16>  최동집 나무.

 

 

 

    <사진 17>  최동집 나무에 대하여.

 

 

 

    <사진 18>  최동집 나무.

 

 

 

    <사진 19>  최동집 나무와 마을 모습.

 

 

 

    <사진 20>  최흥원 정려각(崔興遠 旌閭閣)
                 둔산동 옻골마을 중간에 위치한 이 건물은 조선후기 영남의 대학자이면서 효를 위한 덕목을 정하고 부모의 병을 극진히 돌보는

               등 효행으로 유명했던 백불암 최흥원을 기리기 위해 1789년에 조정의 명으로 세운 것이다.

               최흥원은 둔산동 옻골마을 입항조인 대암 최동집의 5대손으로 1705년에 태어나 82세를 사는 동안 평생 학문에 정진하면서

               130여명의 많은 제자를 가르치며 향약을 실시하는 등 백성의 생활안정을 도모하는데 평생을 보냈다.

               대산 이상정, 남야 박손경과 더불어 영남삼로(嶺南三老)로 추앙을 받으며 당대 영남 퇴계학맥을 이끌었다. 1784년에는 정조의

               첫째 아들이었던 문효세자의 익위사익친이 되어 스승이 되었다.

               정려각은 단순한 구조로 벽면 상부에 홍살문이 설치된 1칸의 비각을 중심으로 주위에 토석담장이 네모꼴로 둘러져 있다.

               최흥원 정려각은 규모는 작으나 18세기 후반 건축양식을 이해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사진 21>  정려각 모습.

 

 

 

    <사진 22>  정려각 모습.

 

 

 

 

    <사진 23>  대구 둔산동 경주최씨 종택(大邱 屯山洞 慶州崔氏 宗宅) - 백불고택(百弗古宅)
                  조선 인조 때의 학자 대암 최동집이 1616년 옻골에 정착하면서 그 이후에 지은 집으로 대구에 있는 조선시대 주택 중 가장 오래

                되었다. 1630년에 지은 안채와 원래 백불암 최흥원을 추모하기 위해 설립한 동산서원이 1868년 훼철되면서 그 자재를 사용하여

                다시 지은 사랑채,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어진 보본당과 포사, 그리고 불천위 사당인 별묘와 가묘 등이 있다.

                생활공간의 오른쪽에 있는 보본당은 1753년에 지었으며, 보본당의 동쪽 담장 밖에 위치한 포사에서는 제사음식을 준비하였다고

                한다.

                보본당 뒤편에 있는 2동의 사당 중 별묘는 최동집의 위패를. 가묘는 조선 정조 때의 학자인 최흥원의 위패와 종손의 4대 봉사위

                위패를 모시고 있다.

                살림채와 재실, 사당 등 많은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대구 둔산동 경주최씨 종택은 조선시대 양반주택과 그 생활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사진 24>  내부 모습.

 

 

 

    <사진 25>  주최씨 종택(大邱 屯山洞 慶州崔氏 宗宅) 입구 - 백불고택(百弗古宅)

 

 

 

    <사진 26>  보본당 담장에 배풍등의 열매가 잘 익어 겨울을 나고 있다.

 

 

 

    <사진 27>  보본당 모습.

 

 

 

    <사진 28>  종택에서 보본당으로 나오는 문.

 

 

 

    <사진 29>  보본당은 역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진 30>  대구 옻골마을 옛 담장
                  옻골마을 옛 담장은 흙다짐에 돌을 박은 형식인 토석담이 주류를 이루며 마을 안길의 훍담장이 대부분 직선으로 구성되어 있어

                질서 정연한 느낌을 주는 점이 특징이다.

                전통가옥들과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동선을 만들어 내는 돌담집은 전형적인 반촌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채로우면서도 고즈녁한 분위기를 잘 연출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세대를 이어가며 민들고 덧붙인 우리 민족의 미적 감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문화유산이다.

 

 

 

    <사진 31>  토석담 모습.

 

 

 

 

    <사진 32>  토석담을 침엽수로 덮은 모습.

 

 

 

    <사진 33>  토석담 모습.

 

 

 

    <사진 34>  토석담 모습.

 

 

 

    <사진 35>  기와로 덮은 토석담도 보인다.

 

 

 

    <사진 36>  나무나 시설이 있을 때는 이렇게 공간을 확보하였다.

 

 

 

    <사진 37>  영내에서 자라는 향나무.

 

 

 

    <사진 38>  담장의 모습.

 

 

 

    <사진 39>  토석담 모습.

 

 

 

 

 

 

 

 

    ※  지금 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의 모습을 소개하였습니다. 더 좋은 내용으로 보완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