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좋아서

490. 회연서원(檜淵書院)에서 무흘구곡(武屹九曲) 까지.

죽림, 대숲, 사라미 2018. 7. 28. 19:08

 

 

           회연서원(檜淵書院)에서 무흘구곡(武屹九曲) 까지.

 

    1. 날 짜 : 2018년 7월 25일

    2. 동 행 : 나미회 회원

    3. 이야기

          날씨가 연일 폭염이다. 예년에 비해 장마가 일찍 끝나서 그 빈 공간을 이렇게 폭염으로 메워주고 있다니 그 고약햠이 대단하다.

        여름에는 날씨가 더워야하고 겨울에는 추워야 한다고 하였는데 요즘은 상식을 벗어난 맹폭염이다. 그래서 그런지 연일 폭염주의보 또는

        오존주의보가 발효중이다.

        그렇지만 나미회의 활동을 이 정도에서 쉴 수는 없는 일. 땀을 흘리더라도 밖에서 흘리기로 하였다.

        시원하고 볼만한 것이 있는 장소를 택한다고 한 곳이 성주와 김천에 걸쳐있는 대가천계곡의 무흘구곡이다. 무흘구곡이 시작되는 곳이

        회연서원 뒷쪽의 봉비암이어서 회연서원은 필연적으로 들러야 한다. 오래된 나무도 있을테니까?

        수도산이 1,000m를 넘는 높은 산이라 나무나 풀을 살피기에는 아주 적당하다고 판단하고 주변의 나무나 풀을 관찰하면서 무흘구곡의

        아름다운 경관도 살피기로 하였다.


        회연서원(檜淵書院)은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동강한강로 9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 선조 때의 대유학자이며 문신인 한강(寒岡) 정 구(鄭 逑. 1543-1620)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그의 사후인 1627년(인조 5) 제자들이 뜻을 모아 세운 서원이다.         서원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1583년(선조 16) 정 구 선생이 회연초당(檜淵草堂)을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던 곳이다. 한강 정 구 선생은         외증조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선생의 도학을 전수하고 그 기반 위에 퇴계학과 남명학을 통합하여 새로운 학통을 세워 실학의         연원을 확립하였으며, 우주 공간의 모든 것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경서, 병학, 의학, 역사, 천문, 풍수지리 등 모든 학문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예학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대학자였다(안내자료에서).

 

       <사진 1>  회연서원의 정면 모습.

 

 

 

       <사진 2>  정면의 문을 들어서면 앞으로 큰 느티나무 두 그루와 뒤로 나무가 우거진 산봉우리를 가진 회연서원이 나타난다.

 

 

 

       <사진 3>  두 그루의 느티나무 중 한 그루는 나이가 400년이 훨씬 넘은 보호수 느티나무다.

 

 

 

       <사진 4>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의 모습.

 

 

 

       <사진 5>  회연서원의 모습 - 뒷 산에는 소나무와 굴참나무가 많이 보이는데, 아래서 자라던 조릿대는 모두 자르고 약품 처리를 하였다.

 

 

 

       <사진 6>  회연서원 편액.

 

 

 

       <사진 7>  회연서원 안에서 자라고 있는 오래된 매화나무인 한강매 모습.

 

 

 

       <사진 8>  한강매 모습이다. 내년에는 흰색의 매화가 피리라 기대해본다.

 

 

 

       <사진 9>  한강 정 구 선생이 아꼈던 백매를 복원하기 위해 서원 주변에 매화나무를 많이 심어서 키우고 있다.

 

 

 

       <사진 10>  서원 주변에서 쉬나무가 꽃을 피우고 잘 자라고 있다.

 

 

 

 

        <무흘구곡(武屹九曲)>
          김천(옛 금릉)에서 발원해 성주 금수(성주댐) - 가천 – 수륜면으로 이어지는 무흘구곡은 대가천의 맑은 물과 주변 계곡의 기암괴석,
        수목이 어우러져 경관이 절정을 이루어 조선시대 성주가 낳은 대유학자인 한강(寒岡) 정 구(鄭 逑. 1543-1620)선생이 중국 남송(南宋)        시대 주희(朱熹)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받아 7언 절구의 시를 지어 노래한 곳으로, 경관이 아주 빼어나 행락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무흘구곡은 성주군에 1곡에서 4곡이, 김천시에 5곡에서 9곡이 있는데, 수도암계곡과 청암사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는 대가천계곡에 자리해 여름철 캠핑장소로 더없이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안내자료에서).

       <사진 11>  오늘 살펴본 곳 회연서원과 무흘구곡이다. 2개 지자체에 걸쳐 있다.

 

 

 

 

        <회연서원 앞에 소개된 무흘구곡(武屹九曲)>

 

        제1곡 - 봉비암(鳳飛巖)

                     봉비암(鳳飛巖)은 봉비연(鳳飛淵)에서 유래한다.

                     봉비연은 기생 '봉비(鳳飛)'가 춤을 추다가 실족(失足)하여 빠져 죽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뒤에 회연(檜淵)으로 그 이름이 바뀌고 회연 위의 바위를 '봉비암(鳳飛巖)'이라 하여 무흘구곡의 제1곡으로 삼았다(안내자료).

 

 

 

        제2곡 - 한강대(寒岡臺)

 

 

 

        제3곡 - 무학정(舞鶴亭)

 

 

 

        제4곡 - 입암(立巖)

 

 

 

        제5곡 - 사인암(捨印巖)

 

 

 

        제6곡 - 옥류동(玉流洞)

 

 

 

        제7곡 - 만월담(滿月潭)

 

 

 

                 서운암(棲雲巖)

 

 

 

        제8곡 - 와룡암(臥龍巖)

 

 

 

        제9곡 - 용추(龍湫)

 

 

 

        <살펴본 무흘구곡(武屹九曲)의 실제>

 

       <사진 1-1>  제1곡 봉비암 올라가는 길 옆에서 쉬나무가 자라고 있다.

 

 

 

       <사진 1-2>  여기가 기생 봉비가 빠진 '봉비연'으로 추정 되는 곳이다.


 

 

       <사진 1-3>  제1곡 봉비암 - 봉비연 위의 바위가 봉비암이라면 이 곳은 봉비암 전망대라 함이 알맞을 것 같은데? 봉비암은 절벽의 바위로

                                         함이 옳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1-4>  제1곡 봉비암 표지석의 뒷면에 있는 내력을 알리는 글.

 

 

 

       <사진 1-5>  제1곡 봉비암에서 내려다 보이는 회연서원.

 

 

 

       <사진 1-6>  제1곡 봉비암에서 보이는 봉비연의 물결.


 

 

       <사진 1-7>  제1곡 봉비암이 있는 산에 굴참나무가 많이 보인다.


 

 

       <사진 1-8>  제1곡 봉비암 뒤쪽 모습이다. 이 뒤쪽에서 보는 것이 봉비암을 바르게 보는 것이 아닐까?


 

 

 

       <사진 2-1>  제2곡 한강대 표지석.

 

 

 

       <사진 2-2>  제2곡 한강대에서 보이는 절벽 아래의 푸른 물.

 

 

 

       <사진 2-3>  한강대 꼭대기에 있는 정자 한강정.

 

 

 

       <사진 2-4>  전망대를 싸고 있는 노송들.


 

 

       <사진 2-5>  한강대에서 바라본 주변 경관.

 

 

 

       <사진 2-6>  한강대 절벽에서 자라는 넉줄고사리.

 

 

 

       <사진 2-7>  한강대의 아름다움을 나타낸 칠언시인가?

 

 

 

       <사진 2-8>  한강대의 뒤쪽 모습도 아름답다.

 

 

 

 

       <사진 3-1>  제3곡 무학정이다. 

 

 

 

       <사진 3-2>  멀리서 보이는 무학정. 


 

 

       <사진 3-3>  무학정의 아름다운 그림자가 물 위에 어린다.

 

 

 

 

       <사진 4-1>  제4곡 선바위(立巖)의 모습이 오늘 따라 더욱 돋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사진 4-2>  제4곡 선바위(입암)

 

 

 

 

       <사진 5-1>  제5곡 사인암.

 

 

 

       <사진 5-2>  사인암 - 바위에서 진주로된 인장을 버린 까닭은 무엇인가?

 

 

 

       <사진 5-3>  사인암도 경치는 아름답다.

 

 

 

       <사진 6-1>  제6곡 옥류동 - 암벽에 제비집 같이 붙여 지은 옥류정이다. 아래서는 올라갈 수 없었는데?

 

 

 

       <사진 6-2>  암벽에 제비집 같이 붙여 지은 옥류정(玉流亭)


 

 

       <사진 6-3>  옥류정의 아름다운 모습 - 아래는 맑은 물이 널직한 암반 위를 흐르고 있다.


 

 

       <사진 6-4>  맑은 물 가에는 산철쭉이 많이 자라고 있다. 봄에 꽃이 피면 옥류정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겠지?


 

 

       <사진 6-5>  노린재나무가 열매를 많이 달고 있다.


 

 

       <사진 6-6>  참조팝나무도 많이 보이고.


 

 

 

       <사진 <7-1>  제7곡 만월담 - 이름으로 봐서는 작은 우물 같은 물 속에 달빛이 가득할 것 같은 모습인데 만월담 가는 길도 없고 만월담도

                      없이 알림판만 혼자 서 있다. 좀 더 세심한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사진 <7-2>  안내판 옆에서 자라고 있는 콩과의 다릅나무가 꽃을 달고 있다.


 

 

       <사진 <7-3>  호두나무.


 

 

 

       <사진 <8-1>  제8곡 와룡암을 알리는 안내판.

 

 

 

       <사진 <8-2>  '와룡암'을 알리는 굴자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그런데 아무리 놀기 좋은 곳이라도 이 부분은 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남이야 뭐라하든 나만 좋으면 그만이다라는 생각은 모두가 생각할 일이 아닌가? 꼭 누구들과 같은 것들인가?

 

 

 

       <사진 <8-3>  와룡암 주변의 모습이다. 좀 더 아름다운 모습을 보일수는 없는가? 쓰레기도 되가져 가고.

 

 

 

       <사진 <8-4>  그래도 목적은 나무에 있으니 박달나무가 잘 자랐다.


 

 

       <사진 <8-5>  박달나무와 노각나무가 같이 자라고 있따.


 

 

       <사진 <8-6>  산돌배나무도 보이고.


 

 

       <사진 <8-7>  와룡암 주변의 산기슭은 경사가 매우 급하다. 이 나무의 이름을 알기 위해 대단한 모혐을 하였다.


 

 

       <사진 <8-8>  좀깨잎나무도 여름 한창인가?


 

 

       <사진 8-9>  재배하고 있는 오미자덩굴이다. 오미자가 많이 달렸다.


 

 

       <사진 9-1>  제9곡 용추

 

 

       <사진 9-2>  서어나무 사이로 폭포가 쏟아진다. 시원하다.

 

 

 

       <사진 9-3>  예전에는 도로에서 폭포를 볼 수 있게 하였는데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나무데크로 위치를 다시 만들었다.

 

 

 

       <사진 9-4>  제9곡 용추폭포가 명물은 명물이다.

 

 

 

       <사진 9-5>  용추폭포가 시원하게 쏟아지고 있다. 누군가 물안마를 받고 있다.

 

 

 

       <사진 9-6>  용추폭포 사이로 잘 자란 굴참나무가 있다.

 

 

 

       <사진 9-7>  쏟아지는 폭포 위에서는 서어나무가 열매를 익히고 있다.

 

 

 

       <사진 9-8>  자생하는 오미자도 보인다. 열매는 재배하는 것 정도 잘 자란 것이다.

 

 

 

       <사진 9-9>  산마도 꽃을 준비하고 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