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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북구 연경동 광해군 태실을 가다.

죽림, 대숲, 사라미 2024. 1. 29. 21:05

 

<북구 연경동 광해군 태실을 가다>


1. 날짜 : 2024년 1월 28일
2. 동행 : 자유탐방
3. 이야기
  전부터 찾고 싶었던 광해군의 태실을 오늘 살폈다. 
2014년부터 북구 연경동 일대가 공공주택지구로 개발되면서 한 때는 태실의 위치마저도 분명치 않았을 때도 있었다. 지금은 어느정도 개발사업이 정리되어 가는 시점이라 위치를 다시 알아보기로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현장에 접근하는 방법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북구에 있는 연경초등학교 앞에 버스 정류소가 있다. 버스 급행6번이나 503번, 또는 동구 8번, 9번 그 외 또 다른 버스를 이용하여 연경초등학교 앞 까지 와서 내린다. 그리고 연경초등학교 앞을 지나 우방아파트 못 미처 오른쪽으로 난 길을 간다. 이 길은 좁은데 결국 연경초등학교와 우방아파트 사이의 길을 걷게된다. 이 길을 끝까지 가면 연경유치원 앞길과 만나게 된다. 여기서 왼쪽으로 도로를 건너면 우방아파트 뒤쪽으로 가는 길이된다. 여기서 100m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광해군태실이 있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전에는 나무와 풀이 우거져 다니기가 힘이 들었는데, 지금은 어느겅도 정리를 해서 안내판 옆으로 난 길을 따라 200m 정도 오르면 푸른 천으로 덮은 무더기들을 보게된다. 이 무더기들이 파괴된 태실의 조각들인지 아니면 재선충을 없애기 위해 벤

나무들을  덮은것인지는 모른다. 어쨌던 푸른 천으로 덮은 무더기들을 지나 조금만 오르면 둥그스럼한 지형을 만난다. 임시로 금줄을 쳐서 둘러싼 곳이 나타난다. 이게 광해군의 태실 전부다. 


또 다른 길은 광해군 태실이라는 알림판으로 가지 않고 우방아파트 110동 까지 계속 가면 오른쪽으로 임도이면서 등산로가 나타난다. 이 길을 200m 쯤 오르면 능선이 나오는데 능선길에서 오른쪽으로 100m 쯤 가면 역시 광해군 태실이 나타난다. 


태실에 대한 설명들에 의하면 몇 번의 발굴탐사를 거쳐서 국가 사적(史蹟)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데 문제는 예산이 뒤따른다는 문제가 있다. 조선 15대 왕인 광해군의 태실이다. 그리고 대구에 있는 유일한 왕의 태실이다. 아무리 그렇다해도 이렇게 무관심속에서 안일만 바라며 지낼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앞서 천년느티나무를 살리기 위해 시민들 모두가 힘을 모았는데 왕의 태실을 해결 못할리 없다는 생각에서 하는 말이다.


시민 모두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의지만 있다면 해결 못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소재가 북구에 있다고 북구에서만 해결하도록 두고 불수는 없지 않는가? 좁게는 북구이고 대구이지만 넓고 크게 보면 대한민국의 일이기도 하지 않는가? 발굴조사가 끝난후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이런 상태로 묻어두고 있어야 하는가? 


태실이 발견된 것은 2003년 경이라 한다. 발견 당시 도굴꾼에 의해 깊이 1.5m, 지름 1.8m의 규모로 파헤쳐져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 태실을 보면 흔적도 찾기 힘들 정도 되었다. 당시 태실을 조성할 당시에는 주변의 나무도 작아서 주변이 잘 보였을 것이다. 아마도 명당중의 명당을 잡았을 거라 짐작이 간다. 그런데 지금은 주변의 나무들이 자라서 하늘을 덮고 주변을 모두 가린다. 


태실에 대한 기록은 왕실의 자료를 보면 원형을 찾을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와 같이 복원하기에 어려움이 따르리라 생각되지만 그래도 대구에 있는 유일한 왕의 태실이 아닌가? 
복원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할수도 있고 또 후세들의 교육자료로도 활용할수 있지 않는가? 
시작이 반이라고 하였다. 이미 계획된 일인데 좀 더 힘을 모아 가봉태실을 복원하길 바라면서 현재의 실태를 올려본다. 
더 이상의 하세월이 없기를 바라면서. 

 

 

<사진 1>  버스정류소에서 광해군 태실을 찾아가는 길.

 

 

<사진 2>  먼나무 열매를 감상하면서 간다.

 

 

<사진 3>  오늘 올라간 길 - 알림판 옆으로 오르다.

 

 

<사진 4>  알림판 내용

 

 

 

<알림판에 안내된 내용>


대구 연경동 광해군 태실
(大邱 硏經洞 光海君 胎室)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 산 136-1

 

 

 태실(胎室)은 왕실에서 자손이 태어나면 일정한 의식과 절차를 거쳐 태를 땅에 묻고 조성한 시설을 말한다.
태실은 아기태실과 가봉태실로 구분된다. 아기태실은 최초로 조성되는 태실이며, 이후 태실의 주인공이 왕이나 왕비로 오르게되면 추가로 화려한 석물을 치장하여 가봉(加封)하게 되는데 이것을 가봉태실이라 한다.

태실은 조선 제15대 왕인 광해군(1581-1641)의 태를 봉안하던 곳이다. 광해군은 1575년 4월 26일에 태어났으며, 아기태실은 1581년 4월 1일에 조성되었다. 이후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 직후인 1609년 11월에 가봉(加封)이 완료되었다. 그러나 현재 태실은 지상구조물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도굴 또한 몇 차례 시도된 적이 있었다. 그리하여 석함에 봉안된 태지석과 태항아리는 현재 용인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보물 제 1065호로 지정되어 있다.

태실의 복원 및 정비를 위한 기초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2013년 시굴조사후 2018년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중앙 태석과 석난간 등 지상구조물은 대부분 유실되었지만 지상구조물의 기초시설과 지하 하부구조(석함)는 비교적 온전한 상태였다. 비록 상부구조가 유실되었지만 조성연대가 분명하여 조선 왕실의 태실 축조 과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사진 : 태실 전경, 석함, 백자태항아리 및 태지석)

 


대구광역시 북구청 관광과(Tel. (053) 665-2352)

 

 

 

<사진 5>  올라간 길

 

 

<사진 11>  광해군 태실이 모습을 보인다.

 

 

<사진 15>  가봉태실 윗부분의 거북 모양 좌대라고 하는데 구별이 안된다.

 

 

<사진 16>  발견 당시 파헤쳐진 부분인가?

 

 

<사진 17>  태봉 뒤쪽에 덮어둔 자료인데 파손된 조각들같이 생각된다

 

 

<사진 18>  파헤쳐진 곳이 가봉태실이 있던 곳으로 생각된다. 뒤쪽에서 본 전면 모습.

 

 

<사진 19>  태봉 너머 길 모습을 살펴보았다.

 

 

<사진 21>  이 길에서 산악용 자전거와 오토바이는 타지말라는 안내문.

 

 

<사진 24>  태봉 뒤쪽에서 바라본 앞쪽의 모습 - 나무에 가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사진 25>  흩어진 가봉태실의 잔해인가?

 

 

 

 

참고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6674980&cid=59464&categoryId=70591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https://www.nocutnews.co.kr/news/5582069 노컷뉴스

https://www.imaeil.com/page/view/2018111517071216946

 

[단독]대구 유일한 조선 왕 태실 '광해군 태실'…발굴해보니 국가사적급

대구 북구 연경동 광해군 태실 발굴현장. 태항아리를 보호하는...

www.imaeil.com

매일신문 20181116일 입력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135744#home 더 중앙

 

 

 

※  감사합니다. 대구에 하나뿐인 왕의 태실을 다시 찾자는 뜻으로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