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좋아서

506. 가야산(伽倻山)은 가야산이다.

죽림, 대숲, 사라미 2018. 11. 5. 17:10

 

 

           가야산(伽倻山)은 가야산이다.

 

    1. 날 짜 : 2018년 10월 31일

    2. 동 행 : 현각님

    3. 이야기

          가야산의 백미로 꼽히는 만물상 코스..         걸출하게 솟은 기암괴석이 보는 각도에 따라 수만 가지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만물상..         이 코스는 1972년 가야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위험한 바위지대로 인해 폐쇄됐다가 38년 만인 2010년 가을 정비된 모습으로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이름 그대로 가야산은 아름답기로 이름난 산이다. 그래서 가야산을 가야산이라 하였다.

        보고 듣던대로 산의 모습이 아름다운 산이라 몇 번을 오르고도 오늘 다시 또 오른다. 만물상길로 올랐으니 그 아름다움은 무엇에

        비할바가 아닌것. 보이는 대로 들여다보고자 이 장을 열었다.

        만물상은 곳에 따라 시각에 따라 사람에 따라 대상은 하나이면서도 그 모양은 천태만상이라 이름하여 만물상이렸다.

        그래서 오늘은 만물상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사진 1>  오늘은 살핀 길은 만물상코스 - 가야산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중심코스로 오르면서 좋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모야보았다. 

 

 

 

        <사진 2>  만물상 탐방로로 들어서다.

 

 

 

 

        <사진 3>  가야산성(伽倻山城)의 내력과 자취.
                   소재지 –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산56-2
                   지정번호 – 경상북도 기념물 제 143호
                   가야산에는 칠불봉에서 발원한 용기계곡 좌우로 만물상과 동성봉 능선을 따라 포곡식으로 축조된 산성이 있는데 이를 가야산성

                   또는 용기산성이라고 한다. 실제로 만물상코스로 오르다보면 산성을 쌓았던 자취와 흔적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 곳이 가야산

                   성의 옛 자취인데 능선을 따라서 칠불봉을 오르는 곳 까지 보인다.

                   이 산성은 대가야의 수도를 방어하는 요충지이자 왕의 이궁(離宮)으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아 산성으로서의 의미가 크다.
                   포곡산성(包谷山城) – 계곡과 주변의 산세지형을 이용하여 축조한 산성으로 성 안에 물이 풍부하고 활동공간이 넓으며 외부

                                               노출을 방지해주는 특징이 있다(안내글에서).

 

 

 

        <사진 4>  능선을 따라 가면 만물상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만물상에 대하여는 개개인이 보도록 하고 별다른 설명을 략하였다.

 

 

 

 

 

        <사진 6>  명찰을 달고 있는 소나무 - 나무와 바위를 보호하자는 뜻으로 '밟으면 아파요'

 

 

 

 

 

 

 

        <사진 9>  만물상의 가을 모습을 사진에 담아 서성재에 전시하였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언제면 볼 수 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사진 24>  상아(嫦娥)덤
                   있는 곳은 만물상탐방로에 있으며 바위의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가야산은 대가야(大伽倻)의 시조설화가 서려있는 산으로 예부터 해동의 10승지 또는 조선8경의 하나로 이름 높은 산이다.

                   상아덤은 달에 사는 미인의 이름인 상아(嫦娥)와 바위(巖)를 지칭하는 덤이 햡쳐진 단어로 가야산 여신 정견모주(正見母主)와

                   하늘신 이비가지(夷毘訶之)의 전설을 담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최치원이 저술한 석이정전(釋利貞傳)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가야산의 여신 정견모주는 하늘의 신 이비가지와 이 곳 상아덤에서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이후 어여쁜 옥동자를 낳게 되었는데

                   첫째는 아버지 이비가지를 닮아 얼굴이 해와 같이 둥글고 붉어 뇌질주일(惱窒朱日)이라 하고, 둘째는 어머니 정견모주를 닮아

                   얼굴이 달과 같이 갸름하고 흰편으로 뇌질청예(惱窒靑裔)라 이름하였다.

                   이 두 형제는 자라서 형 뇌질주일은 대가야(현재 고령)의 첫 임금인 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이 되고, 동생 뇌실청예는 금관가야

                   (현재 김해)의 첫 임금인 수로왕(首露王)이 되었다.

                   상아덤은 기암괴석의 봉우리로 가야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물상(萬物像)능선과 이어져 있어 최고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안내글에서).

 

 

 

 

 

 

 

        <사진 26>  반달가슴곰이 이 곳 가야산에 있기는 한가?

 

 

 

 

 

 

 

        <사진 29>  만물상 거북바위를 찍은 작품으로 역시 서성재에 전시된 것이다.

 

 

 

 

 

 

 

        <사진 32>  백운암지(白雲庵址) 대하여.

                   가야산은 예부터 해동 10승지 또는 조선8경의 하나로 이름 높은 산이다. 가야산은 불교의 성지로 해인사를 비롯한 큰 사찰이

                   창건되었으며, 사찰에 속한 수백개의 암자가 산 속에 산재해 있었다. 이 곳은 백운암이 있었던 자리로 가야산에 있던 사찰에

                   부속된 암자 중 하나로 추정된다.

                   그러나 백운암자의 창건 시기와 폐사 시기는 기록이 없어 알 수가 없다. 상부 평탄지 좌측 계곡과 인접한 곳에는 윗부분이 결실된

                   맷돌 1개가 있다. 하단 석축은 전면 계곡과 인접하고 있어 대부분 계곡물에 의해 유실된 상태이다.

                   백운암지 내 유물은 와편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그 외 분청사기편과 백자편이 확인된다.

 

 

 

 

 

 

 

 

 

        <사진 36>  서성재(西城岾)
                   서성재는 경북 성주군 수륜면과 경남 합천군 가야면을 이어주는 고개(岾)로 과거 가야산성(伽倻山城)의 서문(西門)이 위치해

                   있었던 곳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가야산성은 칠불봉에서 발원한 용기골 계곡을 중심으로 좌우로 펼쳐져 있는 상아(嫦娥)덤,

                   동성봉(東城峰) 능선을 이용하여 축조된 포곡식(包谷式) 산성으로, 성 안에 물이 풀부하고 활동 공간이 넓으며 외부 노출을

                   방지해 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대가야의 수도인 고령과 불과 14km 거리로 전생시 수도 방어의 요충지였으며,

                   왕이 이동할 때 머무르는 이궁(離宮)으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서성재에는 현재 문의 흔적을 찾을수는 없으나 10m 가 넘는

                   넓은 공터와 허물어진 성벽의 규모를 통해 문지(門址)가 있었을 가능성을 확인해 준다(안내문에서).

 

 

 

 

 

        <사진 38>  가야산 최고봉인 칠불봉 정상석.

 

 

 

        <사진 39>  칠불봉 일출 모습 - 서성재에 작품으로 전시된 작품이다.

 

 

 

        <사진 40>  가야산 주봉인 상왕봉(우두봉) 정상석.

 

 

 

        <사진 41>  가야산 역사 신화 테마관 - 근래에 새로 문을 열었다.

 

 

 

 

 

 

 

 

      ※  감사합니다.